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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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4월 6일            영의 생각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8 : 6 - 14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양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들도 다양하기도 합니다. 인종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웃과 공동체에 유익과 기쁨을 주는 삶, 공동체에 아픔과 슬픔을 주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어떻게 생각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무엇을, 누구를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올해의 표어를 다 같이 외쳐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삶” 믿음과 생각은 필연적 관계입니다. 믿고 맡기는 곳에 바라보며 생각을 그곳에 집중하게 됩니다.

인생은 크게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믿고 살아가는 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을 믿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니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가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의 자존심을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으면 비굴해지거나 질투하고, 있으면 교만해지거나 이웃을 업신여기며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누구를 믿고 사느냐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위선적인 삶도 있지만 언젠가는 삶의 모습으로 그 진실한 믿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모습은 두 가지 생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과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한 삶인지를 본문을 통해 알아봅니다.

1. 영의 생각은 생명과 생명력을 가져옵니다.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영의 생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절) 성령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즉 용서의 은총을 통한 은혜를 깨닫게 하는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받은 자임을 확신하게 하는 영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영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통해 은혜 받은 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은혜의 풍성함이 자기 자신의 죄의 회개와 비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더욱 더 깊이 아는 자는 그 깊이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실제로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이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면 불편해집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예수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것, 예수님의 사랑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 자신과 구체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알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죄함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1,2절) 정죄로 인한 절망에서 해방, 형벌로 인한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생각 즉 은혜를 알지 못하는 세상적인 인간적인 생각은 죄의 성향, 죄악된 마음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육의 생각은 예수 안에, 예수 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 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이 삶 속에 나타납니다.

세상 것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세상 것들이 우선순위가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신앙이 자기 자신의 삶의 하나의 수단이 됩니다. 교회 행사가 교회나 자기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 바뀝니다. 화려하고 거룩해 보이지만 실속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과 관한 것들을 자랑함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본능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보이는 것들을 모두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그 자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기에 생명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허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때,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을 때에 삶 속에 생명과 생명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 생명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절)

2. 영의 생각은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절) 예수님 안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은 예수님을 좇아가게 됩니다. 품은 예수님의 마음이 자기 자신의 삶을 이끌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좇아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자신의 삶을 이끌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십자가에 못을 박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짐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주는 마음과 세상이 들려주는 말들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립니다.

“돈만 있으면 산다” “출세해야 만이 산다” “이웃을 밟아야 내가 산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는 결국에는 절망하게 됩니다. 경쟁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이 있기에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소망이 있는 곳에 미래가 있기에 마음에 평안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으로 미리 누리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 순교자들이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그 순교를 할 수 있는 비밀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낙망하지 아니하는 이유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사역을 다하는 힘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아니하는 이유도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비밀을 알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고 하나님께 맡기면서 그 고난을 해결해 나갑니다. 그 장애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그 사고조차도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용하실 도구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에 그 장애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주님을 알게 하고 소망을 가지는 도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성령의 인도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인도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인도는 불신과 절망과 미움으로 인도합니다.

3. 영의 생각은 은혜를 누리며 나누게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2절) 육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또한 순종할 능력조차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도 못하고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따름은 그 따름에서 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삶의 경험을 신앙체험이라고 말합니다. 신앙경험은 다른 사람을 통한 간접경험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이 예수님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종이 가져다주는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경험한 이 좋은 것을 이웃에게 전해야 한다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나누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진 사명자임을 알게 됩니다.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사역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 그리고 고난주간, 성금요일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까? 영의 생각으로 아니면 육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먼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누구를 좇아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오직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만이 생명과 평안과 사랑의 누림과 나눔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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