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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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3월 23일            어찌하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출에굽기  17 : 1 - 7
터키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전에 형제의 나라로 올림픽 개최를 축하 인사하러 고위층이 방문합니다. 그런데 고위층은 터키가 어디에 있는 지조차 모르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실망을 하게 됩니다. 업무상 한국을 방문하는 고위 관리들도 업무상 만남이외에 어디서도 형제의 우애를 느낄 수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현지 언론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자신들의 짝사랑은 끝내야 한다는 그 고위 당직자에 말이 한국에 알려지게 됩니다. 물론 터키 국민들도 자기 자신들의 짝사랑이었음에 실망하기에 이릅니다.

그 후 4년 후에 2002년 한국 월드컵 3,4위전이 한국과 터키가 경기를 펼쳐지게 됩니다. 그런데 외신은 이 경기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로 평가합니다. 가장 감동과 재미와 사랑을 경험하는 경기였다고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세계 축구연맹에서는 이 경기를 축구 역사상 아름답고 재미있고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경기로 소개합니다.

이긴 터키 선수들은 승리의 기쁨보다도 사랑의 경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진 한국 선수들도 패배의 아픔보다도 사랑의 경험에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터키 선수들이 말합니다. 자기 자신들이 골을 넣고 상대방 국가의 관중들에게 축하를 받은 유일한 경기였다고 말합니다. 한국과 터키의 역사를 우리 국민들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서로 상대가 되어 경기를 하게 되지만 자발적으로 초대형 터키 국기를 준비하고 태극기와 함께 터키기도 함께 나눠주게 됩니다.

15,000명의 군인들이 그것도 형제의 나라를 구하겠다고 자원하여 전쟁에 참여했던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상자를 내며 도움을 준 나라이며 한국의 경제 성장을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나라였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한국과의 경기가 있을 때에 한국인들에게 음식 값을 받지 않던 나라입니다. 운동경기의 목적은 경기를 통하여 즐거움과 감동을 누리며 나누는 것입니다.

그 감동은 사랑의 경험에서 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은 감동과 즐거움과 사랑의 경험을 누리며 나누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령에서 진정한 감동으로 눈물이 나오는 경험은 사랑의 경험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불평과 원망으로 다투는 모습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면서, 홍해의 기적과 마라의 기적 등 수없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 모세와 다툽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 오늘 사건을 사도 바울은 반석이 예수님이시며 물이 신령한 음료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그리스도의 반석에서 영원한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감동과 즐거움을 통한 사랑의 경험입니다.

원망과 다툼의 삶이 아닌 사랑을 경험하는 삶을 예수님으로부터 누리며 나누어야 합니다. 진정한 인생의 경기를 즐기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만을 의지해야합니다.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필요성의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부족함의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현실을 부인하거나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분명한 현실의 인식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광야 길을 수많은 사람들과 가축들이 가는 곳에 자연스럽게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필요의 부족은 죽음의 공포로 다가옵니다. 목말라 죽을 것 같지만 아직 죽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을 것 같이 이야기합니다. 광야의 길은 준비되고, 준비될 수 없는 상황과 조건의 길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사로잡히거나 피조물을 믿으면 해결이 될 수 없기에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은 다툼을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에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 원인이 지도자에게서 찾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지도자와의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3절) 모세에게 대한 원망입니다. 모세가 어찌하여 자기 자신들을 죽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7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불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다른 곳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과 조건도, 모세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망과 불평에서 모세는 진정한 해결책으로 눈을 돌립니다. 백성들의 원망을 듣던 모세는 물이 부족함과 백성들의 원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아감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디로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이러한 간절한 간구를 하게 됩니다. 간절한 간구는 부르짖음으로 나타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4절) 하나님께 해결책을 부르짖으며 자기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찾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하리이까?” 자기 자신이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문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문의합니다. 진실한 문제의 개진이 필요합니다. 꾸미지 않고 거짓되지 않은 진실한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만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해결책의 지시를 받습니다.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5,6절)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 문의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지시를 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문의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가 할 일을 지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먼저 진실한 마음으로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자기 자신이 해야할 일을 듣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3.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해결의 방법 즉 하나님의 지시는 순종을 통하여 해결해져 가는 것입니다. 지시 받은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실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의 힘은 과거의 경험의 회상하게 하심으로 격려하게 됩니다. 비슷한 마라의 사건을 회상해야 합니다. 출애굽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적들을 회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과거에 하나님은 현재에 하나님이 아니신 것같이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출 4:20) 모세가 장인의 양떼를 치다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그 지팡이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5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있던 지팡이를 회상 시킨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능력을 보여주던 그 지팡이를 보고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격려입니다. 과거에 능력으로 보호해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원토록 보호하여 주십니다. 현재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이유입니다. 지시의 순종을 통하여 경험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6절)

목격자가 되게 합니다. 자기와 장로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통하여 후손들에게 간 경험 즉 간접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6절) 하나님의 동행의 약속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원망과 불평 그리고 다툼을 일으키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 문제를 있는 그대로 나아가서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문의하십시오, 진실한 마음으로 문의하십시오, 그리고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영원토록 역사해 주십니다.

인간을 믿고 의지하는 곳에 원망과 다툼만이 찾아오게 됩니다. 지도자를 탓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며 탓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입니다. 반석이신 예수님에게 나아가서 순종으로 지팡이를 침으로 영원한 생수 즉 복음의 생수를 맛보는 귀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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