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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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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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2월 23일            온전한 그리스도인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태복음  5 : 38 - 48
신앙은 자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온전함이란 시간적으로는 끝, 내용적으로는 충만, 동작 면으로는 완성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인간에게 현재는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가능하지 않지만 이를 향해 갈 수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는 것은 온전해져 가는 신앙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자라는 것이기에 신앙에는 어린 신앙, 성숙한 신앙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져 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이 자라고 있습니까? 먼저 자기 자신의 삶에서 우선적으로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은 믿음의 자람입니다. 이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있는 지를 어떻게 아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사역을 많이 한다고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역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자기 사역이 된다면 믿음은 자라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선한 싸움인 영적 갈등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열심히 사역을 하는데 짜증만 나고 정죄와 비판 가운데 한다면 그 사역은 자기 사역을 하고 있음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의 하나님의 사역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평안과 기쁨이 더욱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온유해지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정죄와 비판하던 삶이 이해하고 격려하는 삶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해져 가려는 신앙인의 노력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무엇일 까?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6-48절)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먼저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거룩한 삶,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구별된 하나님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것이 시작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 지를 찾아 나서는 삶입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을 주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1.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38,39절) 인간은 서로가 상처를 받거나 주며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한계된 지식과 한계된 능력으로 살아가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도 착각하면서 자기 자신이 전지전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상처를 받거나, 자기 자신에게 해를 준 대상에게는 그것에 대한 보복을 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그 복수도 그 이상으로 갚아 주기를 원합니다.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리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원수에게 원수를 갚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물론 감추면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복수심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내가 그 동안 봐주었더니” 이러한 복수심이 불화와 분쟁과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상처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하여 상대방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성장은 바로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데 있음을 밀씀 하시는 이유입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더욱 큰 복수를 가져오게 되기에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도리어 품어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사울과 다윗을 통해 살펴봅니다. 사울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으로 인하여 백성들에 의해 상처를 받습니다.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 18:7) 자기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소년이며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과 비교를 당하는 것이 불쾌합니다. 비교에 의해 질투가 생기고, 그 질투는 증오로 변하면서 결국에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가슴 깊이 생기게 됩니다. 백성들에 대한 복수는 다윗을 향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이 사울임을 알기에 죽임으로 자기 자신의 십년간의 도망자 신세가 마감하고, 자기 생명의 위협에서 자유 함을 받을 수 있음에도 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길은 용서하는 마음이 더욱 더 풍성해져 감으로 이루어집니다. 용서가 가져다주는 평안과 기쁨을 누림으로 평안과 기쁨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정죄와 복수를 하던 삶에서 용서해 주고 받아주는 이해하는 삶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러한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더 경험하며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0-42절)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이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가까이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만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본문에서 겉옷을 준다는 것은 자기희생을 의미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겉옷은 저녁에 추위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그냥 옷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이 아닌 이웃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를 멀리하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자기중심이 아닌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삶의 현장에 자기 중심의 사랑을 나누며 나아가고 있는 가, 아니면 그리스도 중심인 이타적 사랑을 나누고 있는 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룹을 형성하며 그 그룹만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 지, 아니면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사랑을 나누던 삶에서 점점 그리스도 중심의 사랑을 나누는 삶으로 전환되어 갑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형성된 그룹이 이웃과의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3.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3,44절) 인간의 본능은 원수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되면 그 원수를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면 힘든 것은 원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박해하는 자에게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의 미움을 하나님의 약속에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하신 약속입니다. 그 믿음의 자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복수와 미움은 하나님께 맡기고 도리어 원수나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가는 것,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맡김이 더욱 더 넓고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에 더욱 더 깊고 넓게 맡기면서 담대해져 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의 분량이 충만해져 가는 믿음의 성장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자기중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웃중심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젛) 하나님께 맡기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즉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즉 복음의 능력을 경험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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