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  처음으로
   †  교회안내
   †  예배안내
   †  교회약도
     환영의글
   †  교역자소개
     교회연혁
     교회행사
     교회조직
     선교활동
     주일설교
     주간소식
   †  특별집회
   †  예식안내
   †  영어예배
   †  미국장로교





































































































 문자설교
  2014년 2월 16일            말씀의 중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19 : 1 - 18
성경을 정경이라고 말합니다. 정경이란 라틴어 카논(Canon)에서 유래된 말로 자, 측정하는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판단은 측정하는 잣대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는 눈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측정하는 잣대가 불량하여 그 자를 사용하면 원천적으로 불량한 측정을 하게 됩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자를 가지고 측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 만든 자를 가지고 살아가기에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유카탄 메리다를 잘 다녀왔습니다. 갈 때에 김학로 선교사님께 전해 달라고 선교비를 주신 것, 그리고 밑반찬을 만들어 주신 것, 물품을 주신 것을 선교사님께 잘 전달해 드렸습니다. 삼칸 마을에 건물이 잘 지어 있었고, 선교사님을 통하여 지어진 아름다운 교회들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특히 샌베르나르도 교회에 전도사 사례비를 보내주셔서 전도사님이 사역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코포마 당회가 감사를 전합니다.

62세에 늦은 나이로 유카탄에 선교를 가셔서 이제 팔순이 되시는 동안 그곳에서 사역하며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셨음을 대화가운데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선교의 열매들이 맺혀가는 그 기쁨만은 오직 선교사님과 동역자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선교사님은 왜 늦은 나이에 그곳에 향했을 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며 그곳을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실비아 장로님, 프란시스코 장로님등 수많은 동역자들을 준비하시고 만나게 하셔서 함께 선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히브리어 알파벳 22개, 8절씩 22연으로 구성 176절로 된 가장 긴 절을 가진 시편입니다. 한결 같은, 단일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관한 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룹니다.

진정한 보람과 의미를 가지고, 생명력,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가진 삶을 살아가는 잣대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생의 어떤 기준을 가지고 순종하느냐에 따라 복을 누림이 판가름 나게 됩니다. 복을 받는 기준은 하나님이 주시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생은 그 주시는 기준의 순종을 통하여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인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보람된 인생의 지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절대적인 흠이 없는 지표를 가져야 합니다.
절대적이며 흠이 없는 지표는 절대자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1절) 세상이 주는 지표는 이미 굴절되어 있고, 불완전하고, 잘못된 잣대이기에 그 잣대로 인생을 살아가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이 세상에 혼돈과 혼미와 소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전쟁과 분란과 다툼 그리고 시기와 질투가 있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잣대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유리한대로, 자기가 편리한대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동양에서는 맞지만 서양에서는 틀림이 없기도 합니다.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주관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없이 후해지지만,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없이 까다로워지는 것이 세상적인 잣대입니다. 자기가 관계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에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세상적인 잣대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며 애써 정당화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모든 만물에게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표만이 절대적이며 흠이 없게 됩니다. ‘온전하여’라는 원어의 뜻은 ‘완전히 준비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준비할 때에 하나님이 하여주심을 의미합니다. 이 완전히 ‘준비하다’라는 말은 바로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지표를 받은 자들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완전한 순종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된 인간에게는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가치관 “각자의 소견대로”행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같이 되려는 시도인 죄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타락된 인생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온 백성들이 공동체적으로 자기 뜻대로 하려는 시대를 타락의 시대인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기에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라고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이 완전하게 순종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의인이 될 수 없는 죄인임을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록 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이를 위해 오신 것을 알고 있고, 예수님이 구속, 대속의 사랑을 통해 이미 구원받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순종을 하기 위해서 여호와께 구하는 기도가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2절) 여호와를 구하는 자의 태도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구하는 신앙인은 이중적 태도를 취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세상적 가치관과 하나님이 주시는 가치관인 말씀을 동시에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해서 안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눈을 향하여 전심으로 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구하는 내용이 5-8절에 있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인도의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5절)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주신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례 즉 말씀을 지키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 계획 섭리를 알고자 하는 간구입니다. 자기 자신의 길을 보여 주셔야 자기 자신의 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됩니다. 베드로의 하나님, 바울의 하나님, 손양원 목사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웃의 교제, 신앙의 선배들과의 교제를 부러워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구체적인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이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랑하는 관계가 됩니다. 숨는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제를 나누며 나아가는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알게 해달라는 간구를 합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7절)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옳다고 판단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려 합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기독교적 세계관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직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업체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자기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는 삶입니다. “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 도다”(3절) 적극적으로는 주의 도를 행하고 소극적으로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함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삶,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려고 구별하는 삶이 경건한 삶입니다.

3.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곳에 하나님이 같이하여 주십니다.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면서 자기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의 빚진 자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여 지키게 하십니다.

“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4절) 하나님의 간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의 경험입니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종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맡길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표는 절대적인 잣대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께 맡길 때에 그 순종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은 복음이며 이 복음을 전하려 노력할 때에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삶이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지표 즉 판단과 순종의 잣대, 즉 삶에서 기준을 삼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십시오. 주를 바라보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 2004-2016   kpcow.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