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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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2월 9일            말씀의 중심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태복음  5 : 17 - 20
언어가 다른 외국을 여행할 때에 답답한 것은 언어의 소통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소통이 되지 않으면 상대방의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답답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어가 같아도 서로가 진의를 알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도리어 언어가 같을 때에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언어를 모를 때는 주의를 하지만 언어가 같을 때는 이해된대로 바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나 표정을 통하여 상대방의 뜻을 알게 됩니다. 소리로 듣거나 글로 읽거나 언어를 통해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그 뜻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교제를 나눌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배경 그리고 문화에서 형성된 자기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 이해하기도 하기에 교제에 이상들이 생겨 다투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한계 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는 것의 한계,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가진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존심과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에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며 오해와 오판을 계속하며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는 것도 잘못 이해하고 잘못 판단하는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만 사람들이 자기중심으로 보거나 들을 때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3절) 그리고 그 복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13절) 그런 후에 예수님과 율법과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을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거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17절)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는 사람인 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기름 받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맛과 멋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산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을 알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형식 만에 초점을 맞춰 지키는 일에만 전념하면서 중심을 잃어버립니다.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역도, 찬양도, 예배도, 기도도, 목회도, 제직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중심을 잘못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믿는 자가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중심을 알게 되면 삶 속에 기쁨과 평안이 찾아오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공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된 영생의 기쁨을 누리면서 그동안 무질서했던 삶이 절대적 가치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질서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향하신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을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주신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좀 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그 공의를 알고 자기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진의를 알아내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기쁨은 구원의 진리를 믿고 나아갈 때에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사도 바울이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 안, 주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며, 그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면서 나누게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십니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17절) 하나님의 공의의 완성은 하나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율법을 완성할 수 없는 존재임을 먼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알려주고 계십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총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는 선언이 바로 공의의 완성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다 이루었기에 자기 자신이 율법의 완성을 위해 시도해야 할 일이 더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자기희생으로, 대속의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 율법을 다 이루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의 의미는 즉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빚을 갚아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 것도 지어서는 안 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갚아 나가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여 누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 지를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 오늘 이 말씀은 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실천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형식에 매여 살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것을 누리는 의를 가지고 살아가야함을 의미합니다.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원어의 뜻은 “채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폐지와 부정의 관계가 아니라 완성과 발전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율법은 복음 안에서 계승되고, 완성되며 승화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복음을 통하여 신앙인들이 지혜 충만, 성령 충만 해지게 만들어 갑니다. 신앙인들의 순종을 통하여 누리며 나누게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전부를 누리게 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18,19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의해 중요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필요하시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씀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자기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에 내가 복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일부만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순종하기 쉬운 것,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 욕심을 이루게 하거나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나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택하여 믿고 나아갑니다. 성경의 나머지 것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웃을 위한 정죄의 자료로 바꾸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깨닫는 다는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씀을 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에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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