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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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2월 2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미가  6 : 1 - 8
인간의 죄의 속성의 중심은 욕심입니다. 있으면서도 더 가지기를 원하는 것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아기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있음에도 다른 아기의 장난감을 빼앗으려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질투와 시기, 자랑, 핑계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 중에서 자기 탓이 아니라 다른 것을 탓하는, 즉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죄의 속성입니다. 잘되면 자기 자신이, 못된 것은 조상 탓 혹은 다른 사람 탓으로 자연스럽게 돌리는 것이 죄인으로서 삶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 앞에 ‘하겠다’는 서원의 기도 보다는 ‘달라’는 소원의 기도만을 하게 됩니다. 자기 탓을 하며 회개하기 보다는 하나님 탓하며 핑계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미가서는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과 분열되어 있을 때, 그리고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기 직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해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이 죄악으로 인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회개 촉구의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가의 3번째 설교의 시작부분입니다.

미가는 설교에서 죄의 책망과 심판의 경고를 통한 회개의 촉구를 하는 것이 특색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재판정에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원고와 검사는 하나님이시고 피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 증인은 그대로 있는 산과 땅들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1,2절)

오늘 본문에서 변론이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변론의 원어의 뜻은 ‘바로 잡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가를 통하여 바로 잡으려고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로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때에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변론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8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순종할 때에 멸망이 아닌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은 진정한 회개를 원하십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정의를 행하라는 말씀은 불의에 대한 회개의 촉구를 의미합니다. 은혜와 사랑을 누리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진심어린 회개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즉 긍휼과 자비의 경험은 회개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진심어린 회개의 출발점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 책임전가 즉 자기 이외의 것을 탓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탓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핑계를 대는 신앙, 탓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3절)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하는 삶 즉 하나님을 탓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실하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해주셨는데, 인간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탓하는 것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잘못된 회개를 하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는 형식적인 회개이며, 인간적인 회개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잘못된 회개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로 자신들이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으로 회개한 줄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6절) 번제물 중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일 년 된 송아지”입니다. 깨끗한, 때가 묻지 않은 번제물을 드리지만 자기 자신들의 뉘우침도 없이, 그것을 예물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중심의 변화이며 진심어린 뉘우침을 통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호소를 하기 원하십니다.

둘째로 자신들이 가장 많은 것을 드림으로 회개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천 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7절) 마음은 그대로 두고 질보다는 양으로 회개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입니다.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이라는 예수님의 준엄한 꾸중을 들은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횟수와 보이는 것에 중심을 둔 신앙생활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위선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고, 정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거룩하지 않은 예물을 드리면서 회개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7절)

주변국가의 이교도들 특히 태양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남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흉내 내어 하나님께 정성을 다한다는 어리석은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를 유교적 기독교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1,12)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는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6-18)

2. 하나님은 자비로운 관용을 원하십니다.
“인자를 사랑하며”(8절)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를 쉽게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관계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의 관계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 품어주는 너그러운 관용의 사랑입니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은 위치로 내려와 품어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죽기까지 낮아지셔서 품어주신 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품어주는 사랑입니다. 용서의 은총을 가진 사랑입니다.

오늘 지적 받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본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하는 것은 마음 속에 단단히 새기면서 그들이 유익을 베푸는 것은 물결에 새겨 놓는다” 가장 자기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귀한 제물이 아니면 죄책감 혹은 이웃을 정죄하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중심에 회개함이 없을 때입니다. 자기 자신의 완벽을 추구할 때입니다. 그리고 양이 많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죄책감 아니면 이웃을 정죄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를 잊어버립니다.

먼저 은혜와 사랑을 음미할 때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진정과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꾸밈이 없는 예배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욕심이 없는 예배이며 부족하지만 함께 하는 예배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용서를 통해 함께하는 인자한 삶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3.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8절) 겸손이라는 단어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 된 것과 같은 착각 속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가진 것을 극대화시키는 삶이 교만입니다. 인간은 핑계를 대고, 자랑을 하고 과시를 하려하고, 꾸미고 포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이에 맞게 즉 합당하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도구로 삼으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외면하며 자기 자신의 뜻만을 추구하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함께 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이러한 것은 과거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할 때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이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4,5절)

하나님께서 인도자들을 세우시고 사랑과 공의를 실현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조롱과 멸시를 받으실 피조물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맡길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사용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 인간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회개를 통한 용납과 용서의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도구로서 동역자가 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럴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면서 이웃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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