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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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1월 19일            "WWJBD"
  설교 :     서용정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 : 29 - 42
“당신은 하나님께 유용한 도구다”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수이셨을 동안 많은 도구들을 사용하셨을 것이고 그 중 망치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망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어요.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그 예수님의 망치이기를 바라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도구들은 없나요? 만약에 하나님의 공구통에 우리가 모두 망치라면, 못은 누가하죠? 못질을 하게 되면 벽속으로 사라지는 못도 있잖아요? 하지만 누가 못이 되고 싶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저도 망치가 차라리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를 두고 계셨습니다. 그 12명 중 아무나 될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으세요? 그 12명 중에서도 예수님이 특히 아끼셨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많은 성도들이 이 셋 중 하나를 선택하리라 추측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주님의 왕국의 좌우편에 앉게 달라고 요청할 만큼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한편 베드로는 가장 좋아하는 제자이자 친구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선택할 수 있다면, 누가 안드레가 되고 싶겠습니까? 동생 베드로의 그늘 아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고 예수님이 모세와 선지자 엘리자에게 말씀을 나누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 또 안드레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 1:35-37, 40

저는 안드레가 그의 전 스승인 세례 요한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에서 세례 요한은 유명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누구보다 더 인기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로부터 세례받기 위해 곳곳에서 세례요한을 찾으러 왔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받기 위해서 요한을 찾아가셨습니다. 세례요한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마 11:11

예수님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요한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이 학교로 친다면, 서울대학교나 하바드 정도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어떤 면으로서 세례요한은 학교였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그 누구도 세례요한보다 영적으로 더 나은 가르침을 주지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랍비”(스승)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자랑스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명성과 지위를 가지고 그는 무엇을 했나요? 세례요한은 두 가지 일을 했습니다

1)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 요 1:34
성령을 통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 지위에 대해 걱정하며 예수님을 시기할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해서 증인이 됩니다. 요한은 자신의 지위를 위해 예수님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침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에 대한 증인이 된 것입니다. 이 때 세례 요한은:

2)예수님을 주목했습니다.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1:36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두가 세례 요한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에 조금 부끄러움을 타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누구나 관심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성공의 핵심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따르고 있을 때 그는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선언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서부터 예수님으로 돌립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앞에 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선언한대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 요 3:30

예수님이 주목받게 됨으로 결국 요한은 많은 추종자들이 떠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에 따르면, 그는 두 제자를 잃게 됩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것 입니다.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권력과 명성.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을 알게 됨으로써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얻게 된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그만 회사를 전세계 곳곳에 지사가 있는 대기업으로 만들었다든지 조그만 클럽을 전전하던 음악밴드를 전 세계 곳곳에서 매진되게 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든지 하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처음으로 부르고, 구원자 독생자 예수님을 “랍비” 라고 처음 부를 수 있는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사복음서에 의하면, 안드레는 예수님의 첫 두 제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안드레의 이름이 “베드로” (바위를 뜻함) 로 바뀌지 않았는지는 궁금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른 첫 제자로서, 안드레야말로 예수님의 좌편이나 우편에 앉을 자격이 있지 않나요? 불공평하지 않나요? 아마 그는 이전의 스승이었던 세례 요한을부터 무언가를 배웠을 것입니다.

제자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후 처음으로 한 것은 자기의 동생인 시몬을 찾아가 예수님에 대해서 말해준 것입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대신에, 안드레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그에게 집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드레가 그렇게 함으로 인해, 시몬은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에수님은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시고, 베드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됩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안드레도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 스승처럼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유명해지고 싶고 권력도 가지고 싶고 특별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 것을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걸림돌들이 있고 그 걸림돌들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입니다. 세상은 절대로 경쟁자들이 앞서가게 놔두지 않습니다. 경쟁에서 지는 것은 우리가 남에 비해서 뒤떨어져 있고, 그 최고의 자리에서 그만큼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자신 말고 예수님을 주목시켰습니다.

제자 안드레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소개합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특별하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 11:11

그들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특별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계속 특별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덕분에 세례요한이 세상적으로는 절대로 미치지 못할 정도로 특별해집니다. 예수님을 굳게 믿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예수님께로 주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WWJD라는 모토는 90년대에 기독교인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한 말입니다. WWJD는 “What would Jesus do?”의 약자입니다. 이 모토를 써놓은 팔찌들은 아직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토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내가 예수님이 아닌데...” 라는 생각 때문에 이 질문과 씨름했습니다.

저희 교회 2014년 모토에 따라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WWJBD”로 정하고 격려하면서 묻고 싶습니다. “세례요한을 어떻게 했을까요?”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예수님의 증인 되었고 주님을 주목한 것입니다. 세례요한과 같은 생각을 가진다면 우리가 망치이든지 못이든지 별로 상관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저 하나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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