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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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설교
  2014년 1월 12일            성도의 영광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3 : 6 - 11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2014년도에 교회가 설정한 표어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주님을 좇아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좇아가는 삶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은 십자가의 연합으로 상징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삶과의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의 연합이며 그리스도의 부활과의 연합입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그리스도가 원하는 삶을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을 의미랍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맡기는 삶에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의 연합인 동시에 성도의 영광입니다.

오늘 본문에 오실 메시아의 영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오직 메시아에게 주심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8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의 영광은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곳에 그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 삶이 어떠한 삶인지, 즉 그리스도인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겸손한 마음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붙드시고, 기뻐하여 택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붙드시고 기뻐하여 택하신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붙드시고 기쁨으로 택하여진 존귀한 존재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귀한 존재임을 아는 자입니다. 다른 것으로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하지 않아도 존귀한 자임을 알기에 다른 것을 하지 않습니다. 인기로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인정으로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사역으로 자기 자신을 존귀하

이민자들의 이세들이 인생의 여정에서 가지는 문제 중에 중학교와 대학 입학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중학생 시절에 그 정체성을 해결하려고 학생들 사이에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웃기는 일로 유명해져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운동으로 유명해져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공부로 유명해져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싸움으로 유명해져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정체성의 혼란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축복받은 존귀한 존재인지를 모를 때에 다른 것을 찾습니다. 사역을 통하여 정체성을 가져보기를 원합니다. 자기 세상적인 능력 즉 부를 통하여 정체성을 가져보기를 원합니다. 권력을 통하여, 학업을 통하여 아는 지식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존귀한 자임을 보여주려 합니다. 신앙인의 정체성의 혼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존귀함을 아는 성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에 정의를 베푼 그 소식을 전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인 영생의 비밀의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한 삶을 통하여 그 소식을 전한 것처럼 성도들도 그러한 마음으로 소식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그 영광에 동참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2절)

자랑하고 떠들며 나타내며 요란하게 말만하는 전도가 아니라 실제적이며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곳에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믿음의 본을 보여준 믿음의 성도들은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그 삶의 순간순간에 세상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겸손한 섬김의 사랑이, 대속의 사랑, 희생의 사랑을 알게 될 때에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통해 감동을 받습니다.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위치에 있으면서 저렇게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이 배웠는데도 이웃에게 배우려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존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데도 근검절약하며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러한 겸손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인 십자가의 비밀을 전하는 삶입니다. 바로 성도의 영광입니다.

2. 위로와 격려로 회복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곳에 생명의 부활이 나타납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죽어가던 영혼이 회생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3절)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데서 시작됩니다.

상한 갈대를 꺾으면 소멸됩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한 갈대를 감싸고 치유해서 건강한 갈대가 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꺼져가는 등불의 불씨를 살려서 불이 환하게 비치게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이웃을 치유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치유는 복음으로 치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균하여 치유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 삶이 돋게 하여 치유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격려하여 소망을 가져다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게 함으로 용서의 은총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7절)

치유는 회복과 자유를 의미합니다. 회복과 치유를 통하여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에서 제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에 휩싸이면 그 고난에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 고난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고난에 갇히고 흑암의 감방에 갇히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어둠이 찾아옵니다. 어린 딸이 옆방에서 부모들이 너무나 힘든 나머지 죽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업이 실패하여 어려움에 삶을 포기하려는 부모에게 달려가 유년주일학교에서 배운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아빠, 엄마 예수님이 계시잖아요” 하며 웁니다. 딸아이가 울면서하는 말에 부모는 외면하고 있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부모는 잊어버렸던 주님의 사랑을 붙잡기 시작합니다. 그 믿음으로 일어서기 시작합니다. 어린 딸은 부모에게 치유와 고난에 갇혀 있는 부모가 자유함을 가지게 만든 것입니다. 그 가정에 미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렵고 암담한 현실이 눈을 멀게 하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린 딸이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복음의 소식을 전함으로 부모들의 영적인 눈을 치유해준 것입니다. 고난의 사슬에 매여 있던 마음에 자유함을 준 것입니다.

바로 이 매임에서 풀려날 때에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소망이 있는 곳이 천국이며, 소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기에 지옥문을 나오게 됩니다. 어느 공동체는 고난가운데 파괴되어 가는데, 어느 공동체는 고난 가운데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다름이 여기에 있습니다. 환경에 지배를 받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주님께 맡기고 환경 너머의 미래를 바라보는 공동체가 있게 됩니다.

사실은 인간은 암담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는 것 별 것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기에 주님께 맡기지 아니하면 알 수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3.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삶의 기준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과 행동과 그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4절)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며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 모든 삶의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물론 어느 때와 상황 속에서는 그 사랑을 누리며 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 먼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욕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에 이 점검이 없으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욕심이나 자존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만들거나 하나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조지 뮐러 목사님께서 수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눈 비밀입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알려달라고, 지시해 달라고, 말씀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묵상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서, 갑작스러운 만남이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임을 성령님이 감동으로 알게 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뜻을 알았을 때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러한 삶 속에 그 영광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널리 널리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붙드시고, 마음에 기뻐하는 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그 사람이 당신임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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