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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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2월 1일            하나님의 빛에 행하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15 : 4 - 13
사람들은 새로운 것, 알지 못하는 것을 할 때 두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에 가야할지 망설이는 시간에 교회에 나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많은 권면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한 음성이 마음에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네가 무엇이 되어서 한다는 것이 교만이다”

담임목회자로 처음으로 청빙을 받았을 때에, 청빙에 흥분되어 부교역자로 있던 교회에서 교인들이 베풀어주는 환송파티에 참석하고 다닐 때 갑작스럽게 어려운 일이 닥쳤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경고라고 생각되어 기도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어느 덧 목회에 자신을 잃어버리며 하나님께 목회지침에 대한 간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에 갑자기 가슴 속에 다가오는 성구가 빌립보서 3장 3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할례당을 목회로 대체하니 훌륭한 목회지침이 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내 자신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직 미숙한 사역자이기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내일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는 미숙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무지하기에 두려움 속을 살아가게 됩니다. 모태신앙, 오래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성장이 없다면, 문제는 하나님 아니면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문제가 있으실 리 없기에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빛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에 행하기 때문입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절) 오늘 본문을 통하여 여호와의 빛에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께 맡기고 의논해야 합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3절) 여호와의 산에 올라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이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아닌 인생을 의지하기에 섭섭함과 갈등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를 의지하거나, 자녀들을 의지하다가 결국에는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 이유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어느 때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 경우들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죽을 때에도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왜? 라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비밀을 발견하고 찬양한 시편이 있습니다. 아삽이 하나님께 올린 시편 73편입니다. 아삽은 이것이 이해 안 되어 아주 곤란하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심히 곤란하더니”(16절)

아삽은 이 문제를 가지고 자기 혼자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아간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아삽은 시편 후반부에 보면 이러한 질문을 한 자기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자기 자신의 우매무지함과 이러한 자신이 짐승 같음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그런 후 복에 대하여 새롭게 깨닫고 이렇게 고백하며 다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행사를 전파 하리이다“(28절)
한동 대학을 세우고 20여년 총장으로 사역하며 그리스도인으로 많은 사회지도자들을 배출한 김영길장로님께서 처음 포항에서 중소기업을 하는 분으로부터 대학 설립에 대한 요청이 왔을 때에 그곳을 향해 갈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데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비밀을 알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삽이 자기 자신을 알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알면서 하나님의 사역을 다짐할 수 있었던 비밀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여호와의 전, 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그 위가 시은좌 즉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소는 구별된 거룩한 장소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 주시는 곳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3절)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지시를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가르쳐주신 그 길로 행할 때에 하나님이 경험하게 하심으로 알게 하여주시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녀들에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으며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의문이 드는 것을 하나님께 질문하면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살피면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마도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기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향한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4절)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삶이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삶이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삶에서 도움을 주는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칼과 창은 싸움의 무기입니다. 이 무기들이 보습과 낫인 생산하는 농기구로 바뀌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웃이 상처를 입었는데,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이웃이 치유를 받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자그마한 섬김을 통하여 이웃이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의 자그마한 수고가 이웃이 즐거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오래 전 여행 중에 열차 승무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제 열차를 타고 가는 데, 승무원이 표 검사를 하면서 여행 중임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30-40분후에 아름다운 경치가 나타나니 그동안 졸거나 잠을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테이블에 지도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가봐야 할 곳도 표를 해줍니다. 그분과 교제의 시간은 3분정도 되었지만 그분의 자그마한 섬김이 저의 부부가 비경을 즐기는 귀한 기쁨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사역은 엄청난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자그마한 순종의 섬김이 하나님의 도구가 될 때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서로 치는 관계를 멈추고 화목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이 다툼의 도구가 아니라 화목의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함께하는 곳에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삶에서 이웃을 격려하고 용서하며 용납하는 삶으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기 자신이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허물과 죄 투성이인 자기 자신을 대속의 사랑으로 용서의 은총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젊은 목회자의 잘못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목회자들에게 원로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주의 종을 여러분들이 무슨 자격으로 정죄를 합니까?”세상의 빛, 인간의 빛 가운데 행하면 복수와 정죄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빛은 용서와 용납하며 화해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빛, 인간의 빛이 아닌 하나님의 빛에 행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조건과 기대를 가지며하는 인간적 사랑이 아닌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누리면서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빛에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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