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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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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 17일            새롭게 되는 삶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이사야   65 : 17 - 25
그리스도인이 되면 아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롭게 되었다는 사실과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된 삶을 살아가야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현대 교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교회와 교인들이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도리어 사회의 근심과 걱정거리가 되는 경우들도 있게 됩니다. 세상이 말하는 것이나 다른 신앙인들과 교회에 대한 질문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내 자신은 새롭게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 짧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축복을 누리다가 영원한 축복의 세계로 가는 특권을 가진 자가 바로 우리 자신임에도 누리지 못한다면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새롭게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늦기 전에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원인과 이유를 찾아보고 그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삶을 누리며 살아가야합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회개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복을 구하는 남은 자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로 인해 도래할 영원한 새로운 하늘과 땅에 대한 약속을 하여주시는 내용입니다. 오늘 새롭게 누리는 삶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과거의 자기 자신의 옛 사람은 과거 속에, 피해의식 속에 살아가지만 과거가 아닌 미래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자기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전지전능하신 영원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그분의 사랑을 믿기에 평안과 기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헛된 인생이라는 푸념 속에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의 맛을 보며 멋을 즐기는 실속이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외면하고 세상 연락을 즐기려다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루터기 즉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은 자, 그루터기가 되어 새롭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비밀을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새롭게 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원인의 가장 근본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맡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출발점은 맡김에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신앙의 대상에게 맡김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기 자신을 맡기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이 잘못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을 사용하려는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의 대상을 자기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게 자기 자신을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7-19절)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분이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그 창조의 주체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시는 이유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입니다. 즉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 신앙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각자를 향하신 새롭게 되는 삶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에 맡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새롭게 되려고 애를 쓰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종교행위를 통해서, 그것 자체가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김이 없는 신앙생활에는 새롭게 되는 삶의 경험을 하지 못함이 헛수고입니다. 신앙이 회개에서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이 겸손이 중심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이 순종이 중심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은 개조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을 그대로 두고 자기 자신이 개조하려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맡기면 안 되기에, 자기 자신은 믿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포기, 자기부인, 자주권포기, 자아를 십자가 못 박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아니하면 주님을 따르지를 못하는 이유입니다. 자존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삶을 즐기고 누릴 수가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얼마나 자기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을 알려하고 살피는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즉 기도와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를 쓰는 지를 살펴보십시오. 일어나는 사건, 들려오는 말씀 속에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과거보다 더욱 많아지고 있는 지를 살펴보십시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해 주시는 삶을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2.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18절)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24절) 신앙은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물론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알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18절) 신앙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을 경험함으로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정의가 합해있는 삶 자체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경험하며, 그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주관하시고 구체적으로 관계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경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새롭게 만들어 가시는 자기 자신의 삶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자기 자신의 생각과 한계를 넘어선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는 줄 알았지만 결국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경험하는 것일 것입니다. 사역자들이 경험하는 것일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사역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국에 깨닫게 되는 것,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음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하시는 그 길이 생명의 길이었음을 후회하며 경험하기도 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임을 즐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25절) 인간의 세계의 원리는 끼리끼리로 그룹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밟히지 않기 위해 밟으려고 하는 삶입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즉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의 힘을 가지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긴 자는 하나님께 사용되는 일에만 관심이 가지며 살아갑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고 생명이 되는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원하시는 뜻을 알고 순종하는 일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18,19절) 시온 성, 예루살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즉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한 즐거움 즉 복음이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통한 화목의 도구가 되어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새롭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민족이 달라도, 인종이 달라도,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이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성찬을 나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념하며 그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하시는 그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 생각하고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실감해 나갈 때에 세상에 쳐놓은 담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언어가 다른 낯선 곳에서 밤늦은 시간에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약속 시간 내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미리 지도를 보고 연구하여 약도까지 만들었지만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오자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길 이름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른 언어라 익숙하지도 않고, 어두운 밤이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사람에게는 “나를 따르라” 큰 소리를 쳐 놨습니다. 그 때에 한국말이 들려옴,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저는 이곳에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인데요. 박사과정을 다 마치고 이제 논문만 쓰면 되서 시간이 충분하고요. 오늘 공연을 보려고 나왔는데 일찍 나와서 한 시간 가량 시간이 있어요. 이곳이 길 찾기가 어려운 곳이에요. 제가 안내해 드릴께요”

저와 저의 집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믿고 따라가는 일입니다. 물론 목적지에 길이 나오자 부담을 가질 까봐 인사를 하고 사라집니다.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만든 약도를 주머니에 넣고 그 여학생이 인도하는 데로 따라가는 일이었습니다. 가면서 대화를 통해서 그곳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여학생을 믿어서 유익을 본 사람은 바로 저희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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