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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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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1월 10일            보화를 발견하는 삶
설교 :     조문길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3 : 44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입니다. 성경에 ‘천국’ 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특이한 사실은 그 대부분이 마태복음에 등장하며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에 열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

마태복음 13장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과 같다” 라는 표현을 통하여 일곱 차례에 걸쳐서 천국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네 가지 종류의 땅에 떨어지는 씨 뿌리는 비유, 주인이 좋은 씨를 뿌렸는데 밤중에 원수들이 몰래 가라지 씨를 뿌렸다는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그리고 오늘 읽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 좋은 진주의 비유, 마지막으로 물고기를 잡는 그물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을 소개해 주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서로 다른 일곱 개의 비유 이지만 그 내용과 의미에서는 동일한 것을 설명하신다는 것입니다.그러면 ‘밭에 감추인 보화’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밭’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농사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밭에서 농부는 계절에 따라 씨를 뿌리고, 물을 대고, 김을 매며, 가을이 되면 추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추수 때에는 좋은 열매와 좋지 못한 열매를 판정하여 좋지 못한 열매를 버려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고 그 계절들을 지나고 나면 살아온 생을 놓고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의 판결을 받을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이야기할 때 하나님의 심판 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잣대로 적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우리들은 인생의 어느 계절을 지나시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이생에서의 우리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준비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계속 보면, 이런 밭에 감춰진 보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돌아가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들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땅을 구입하는 이유가 땅 값이 많이 오를 것 같아서, 소출이 몇 갑절 되기 때문에, 아니면 최상품의 곡식이 나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그 땅 속에 숨겨진 보화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화’는 무엇일까요? 보화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은 ‘나’라는 인생의 밭에서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분명 보기에 선하고 좋은 것이며 대부분의 인간들이 소망하는 바이지만 내 인생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의미 있고 선한 일이라 하더라도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되면 의미의 진정성이 감퇴되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전 보다 더 의미 있어 보이고 선해 보이는 일들을 찾게 되고, 이미 해 오고 있는 의미 있는 일들에 대하여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며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에 그것이 감추인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추인 보화’ 라 함은 용서, 화해, 용납, 섬김, 희생, 나눔, 베품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이 중에서도 용서와 화해, 특별히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의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과거를 지금까지 있어 온 나의 한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며 화해하는 것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와 가치의 삶을 사는데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 기독교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와 약화되고 교인 수가 감소한다는 측면에서뿐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세상과 상관없는 지경까지 간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라는 선언에 세상이 감동을 받으리라 착각을 합니다. 현대의 세상은 이 세상 다음의 내세가 있다는 것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세의 구원을 받았다.’ 라는 선언은 오히려 그들에게 소음

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세상이 기대하고 감동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 선언이 아니라 나를 희생하며 바치는 의미 있는 가치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을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분의 죽음 앞에 세상 사람들까지도 머리를 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분의 신앙고백이던가요?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희생했던 그 삶이 숭고해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나도 그처럼 살겠다.’ 라는 작은 충동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보면,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답하십니다. 우리 안에 천국의 실체를 경험하고 천국의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초점은 ‘천국’ 은 앞으로 장차 다가올 천국이기도 하지만, 오늘 현실의 삶에서 천국을 살아가야 그 미래의 천국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분명 도래할 천국을 기다리지만, 오늘도 내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고 나의 소중함과 귀함을 인정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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