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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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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1일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52 : 1 -
9
의지한다는 것은 어디엔가 기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어떤 힘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힘에 대한 믿음으로 기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힘을 길러 그 힘에 의지하려 합니다. 그 힘을 믿고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힘을 자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려야만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력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은 돈을 의지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학력을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배운 지식에 의지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런 힘이 미약할 때에 이웃의 힘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힘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 자기 자신을 보호해주고, 자기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도와 줄 대상을 찾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자신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 그 힘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실제적으로 힘이 있는 실세들에 접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이런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인 다윗의 시에도 이러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도엑이라는 사람입니다. 사울의 목자장인 신하 도엑의 밀고로 다윗을 도운 놉 땅의 제사장이었던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이 몰살을 당함을 듣고 참담한 상황에서 지은 시편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살해 위협을 피해 놉 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놉 땅에 제사장 아히멜렉은 다윗이 쫓겨 온 것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다윗이 자기 자신의 신변이 어떻게 될지 몰라 사실을 은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아히멜렉은 다윗을 사울 왕의 사위로 대접하게 됩니다.

성전에 진설병으로 허기를 채우게 하고, 성전에 있던 골리앗이 쓰던 칼을 다윗에게 줍니다. 이를 알게 된 도엑은 밀고를 하여 사울 왕으로부터 막대한 재물을 얻게 됩니다. 이 소식은 다윗에게는 아주 참담한 소식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실을 은폐하였었고, 이를 모르는 아히멜렉은 다윗을 도운 반역자가 되어, 다윗으로 인하여 온 가문이 멸족하는 슬픈 사건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엑의 종말을 이야기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은 다윗이 그 아픔을 달래고 일어 설 수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종류의 의지처가 나옵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도엑의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7절) 재물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삶을 말합니다.

도엑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사울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리한 칼인 삭도와 같은 간사하고 거짓된 말로 자기 유익을 위해 이웃을 참소합니다.

어리석은 삶, 이웃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웃의 생명까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자신의 행동의 종말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이기도 합니다. 영적 소경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기도 합니다. 도엑은 자기 자신의 밀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기 유익을 위해 밀고하는 모습이 이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도엑이 어리석은 이유는 영적 소경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두 사람이 흰 우유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눈 먼 소경이었습니다. 그 소경이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희다는 것이 무엇이니?” 친구는 말합니다. “흰 눈과 같은 것이야” “흰 눈은?” “흰 종이 같은 것” “그러면 흰 종이는?” “네가 마시고 있는 흰 우유 같은 것?” 흰 것을 볼 수 없으니 알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것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8절)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9절) 다윗이 절망의 현장에서 소망을 가지고, 복수의 현장에서 용서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다윗의 상황은 가슴이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되어 아히멜렉 만이 아니라 온 가족과 가문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이 수없이 죽는 대 참사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죄책감, 좌절감, 비탄한 마음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과 일행도 언제 사울에게 잡혀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 도리어 악인의 종말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고, 진정한 승리자 누구인지를 선포할 수 있는 비밀을 가진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확실하게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비참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푸른 감람나무에 비유합니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8절) 푸른 감람나무는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잎이 우거진 나무로 의인의 풍요로움과 형통함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앙상한 가지만 있는 나무와 같은 상황에 있는 다윗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는 푸른 감람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밀입니다. 바로 믿음, 의지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다윗의 비밀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세상의 어느 것도 이 믿음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확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피조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확신입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인하여 기뻐한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확신에 굳건히 서는 사람입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믿음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3.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1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8절) 다윗의 믿음은 한결같은 믿음입니다.

다윗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도,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하여 죄를 지어 나단 선지자에게 지적을 받을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나라가 아무런 문제없이 태평성대를 누릴 때도, 전쟁이 치열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신하들이 도울 때도, 신하들이 배반했을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임종의 시간까지도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합니다.

신앙은 전적으로 영원히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하는 의지는 신앙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필요할 때, 자기 자신이 손해 보지 않을 것 같을 때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불리할 때, 자기 자신에게 희생이 요구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함께하심을 믿을 때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즉 자기 자신의 상황과 조건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삶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의지할 때에 담대하게 소망 가운데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붙잡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나오게 됩니다.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역경이 도리어 축복이 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영영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다윗이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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