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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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30일            하나님의 사역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누가복음  9 : 51 - 62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이 은혜를 누리며 나누는 것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사역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경험합니다. 사역을 통하여 교회의 힘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똑같은 사역같이 보이지만 경험하는 것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함께 같은 사역을 하고 있지만 경험하는 것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33명의 익투스 젊은이들과 교사 한분 그리고 선교사님 총 35명이 지난 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저희 교회에서 숙식을 하면서 뉴욕을 구경하고 워싱턴으로 갔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이 선교부를 중심으로 열심히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아침, 저녁을 대접해 주고 스낵과 잠자리를 위한 침랑과 배게 그리고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을 하며 돌보아 준 젊은이들, 그리고 설교를 스페인어로 번역해주어 젊은이들이 설교를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정성어린 헌금을 해주셔서 드리기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학생들이 여러모로 표하고 어느 학생은 감사하는 마음을 세 페이지에 걸쳐 편지를 영어로 써놓고 갔습니다. 함께 기도하며 사역하신 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거나 아니면 인간 경험만을 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단기 선교의 사역을 가게 됩니다. 여름수련회를 준비하고 함께하면서도 두 가지 모습으로 사역을 하게 됩니다. 두 가지는 하나님의 사역 혹은 자기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사역은 간증이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역은 간증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간증이 있는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자기 자신이 순종함으로 경험하여 증거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제가 이렇게 주님을 바라보며 순종했더니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사역같이 보이나 다른 경험, 다른 열매를 맺어가는 이유입니다. 그 사역이 자기 사역이냐 하나님의 사역이냐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네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배척한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어디든지 예수님을 좇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 좇으라고 했지만 먼저 부친 장례를 요청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예수님을 좇겠다고 하면서 가족 작별을 먼저 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역은 어떤 사역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소외된 자를 살리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소외된 자를 받아 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기 자신을 받지 아니하면 자기 자신을 소외 시키게 되어 고립감 속에 고집만 심해져 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무시하고 외면하고 죄인으로 여기는 소외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 한 부류의 민족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을 때에 사마리아는 북왕국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점령한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 민족과 앗수르 인이 결혼하게 하여 혼혈정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민의식이 강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이 상실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민의식이 강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인을 죄인으로 여기게 됩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거치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피해 베리아로 우회하여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지나갑니다.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하자 이번에는 사마리아인들이 배척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시하는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는 상황과 같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야고보와 요한이 분노하며 불로 멸망시킬 것을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됩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사역을 하려고 할 때에 도리어 배척을 받는 경우들이 흔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자기 사역을 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대하는 것이 다릅니다.

자기 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정죄의 사역, 징계의 사역, 분노의 사역을 하게 됩니다. 사역의 현장에 이웃을 정죄하며 분노함이 있다면 자기 사역의 현장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 가치에 맞지 않아 자존심이 상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들이나 목회자 가운데도 선교지 사람들이나 목회지의 교우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분을 대할 때에 사역이 자기 사역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을 하는 사역은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합니다. 자기 능력과 지혜를 사역을 통해 보여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역은 소외된 자들을 받아 드리며 구원하는 사역이 됩니다. 세상은 없는 자, 낮은 자, 죄지은 자를 격리하여 소외시키려 합니다. 소외된 자들을 정죄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면서 조롱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분노하며 상대방을 멸망시키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소외된 자와 함께하며 그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역 즉 살리는 사역을 합니다. 소망과 사랑과 믿음을 가지게 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생명력을 주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2. 신중하게 살피는 사역입니다.
어디든지 예수님을 좇겠다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57절)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58절) 예수님께서는 다름이 아니라 성급한 사역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열정으로 하는 사역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는 사역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은 자기감정에 따라 하는 사역입니다. 목적이 없는 열정으로 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살피는 사역입니다.

상대방과 공동체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생명력과 생명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생각하며 연구하는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은 주의하며 사역을 하게 만듭니다.

사역의 다양성도 알게 되고, 사역의 대상이 민족마다, 지방마다, 사람마다 다양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얼굴빛을 살피고, 문화를 살피고, 특성을 살피는 사역을 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여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면 기쁘고, 감동이 없는 것 같으면 좌절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하나님 사역이 아닌 자기 사역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랍니다. 다른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면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사역이 아닌 자기 사역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고백입니다.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여 교인들이 감동받는 것이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에서 깨어있지 아니하면 사탄은 우리들을 자기 사역을 하도록 만들어 갑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자기 자신이 얼마나 지혜가 있는지를 알리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 갑니다. 다른 사역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하며 그 사역을 좌절하게 만들거나 포기하게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사역의 방해자나 장애자가 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인지 하나님이 얼마나 전지하신 분인지를 사역을 통해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동역자가 하나님을 알리도록 협조하며 함께하고 격려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3. 먼저 주를 따르는 사역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절) 주를 좇으라 한 사람은 부친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61절) 주님을 좇겠다고 한 사람도 작별인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자는 영적인 일이 우선됩니다.

즉 주님을 따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지 못하고 자기 사역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우선순위의 문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 보다는 육적인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인간적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기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우선순위에 두는 마음은 분리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만듭니다. 주의 일을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기에 세상적인 방법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교회에서 사람의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사람만나는 데에 우선순위를 주는 경우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쟁기를 힘있게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쟁기를 잡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를 바라보거나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지 않기에 좌절하며 쟁기를 놓게 됩니다.

오늘 단기선교 파송식을 하며 이번 토요일부터 다음 주 토요일까지 니카라과의 전구 선교사님의 사역에 동참하며 사역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역, 소외된 사람들을 살리며 신중하게 살피면서 우선순위를 영적인 것에 두어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한 하나님의 사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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