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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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9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146 : 1 - 10
펠리사이드 노회로부터 어느 미국 목사님 은퇴 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리 노회와 펠리사이드 노회에서 사역하시던 브루스 티슐러 목사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모임입니다. 20여년 간 동역자로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을 나눈 사이이기에 초대장이 온 것 같았습니다. 오하이오 마우미 벨리 노회의 부총무로 계시면서 같은 노회에 있는 저와 제가 시무하던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부임한 후에 2개월 후에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저의 노회에서 저를 환영하고 그분이 오시는 것을 결정하던 때에 반가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목사님을 피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이렇게 따라 오셨다고는 조크에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교회 이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교회 건물이전 통과 노회에서 저와 친한 미국목사님들이 브르스 목사님에게 고마워하라고 말합니다. 브루스 어떻게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해주신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 은퇴하실 나이가 되셔서 한 평생을 주의 종으로 사역을 마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14명의 우리들의 자녀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뉴 러셀 고교를 졸업하는 세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했습니다. 졸업의 의미는 과정을 거쳤고, 그 거쳤음을 공적으로 증명해 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보와 주간소식에 명단을 실은 것은 졸업생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과정으로 새롭게 진입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는 소망들이 생기게 됩니다. 인생도 이 세상에서 과정을 거친 후에 졸업하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임종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신앙인의 임종은 천국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졸업하거나 은퇴하거나 임종하는 시간에 감사와 은혜를,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고백하는 시간이라면 그 과정에서 무엇인간 풍성함을 경험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을 거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146-150편까지 할렐루야 시편이라 부르는 시편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2절) 영혼이 영원토록 평생을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삶이 보람과 의미를 누리는 삶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의 삶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5절) 삶의 현장에서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복이 있는 삶, 다른 말로 말하면 인생을 마감할 때에 진정으로 감사와 은혜를 고백하며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본문을 통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께 그 뜻을 두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소망을 누구나 가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기에 미래에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소망이라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소망을 세상에 둡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과 관계되어진 인생을 그 소망을 이루는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에게 그 뜻을 둡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이 노력하거나 투자한 곳에 그 뜻을 두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사랑을 베푼 곳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 대가가 뜻으로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물론 때로는 그러한 것이 뒤에 있는 지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에게 그 뜻을 두는 경우들이 흔합니다.

자녀들을 사랑으로 키우고 보살피며 당연히 할 것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섭섭해지는 것, 기대가 되는 것은 자녀들에게 소망을 가졌다는 의미도 됩니다.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자녀에게 실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뜻대로 되면 즐거운 것도 이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곳에는 하나님을 대하는 것도 자기 자신의 뜻을 이뤄주시는 분이 되어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데, 알리는 데 수단이 됩니다. 바로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극명하게 보여 준 모습입니다. 기도할 때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자거리에서 합니다. 구제할 때도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많이 알게 할 수 있는 곳에서 공개적이며 요란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인간의 뜻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셔야 하기에 기도도 강요의 기도가 됩니다. 물질, 권력, 명예에 그 뜻을 두는 곳, 하나님은 그저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됩니다. 그래서 그 뜻을 이루어지는 것 같으면 하나님의 존재는 사라집니다.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려야 하는 신앙이 세상 적 가치를 누리는 것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 뜻을 두는 삶은 다르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쓰시는 동역 자, 하나님의 도구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자임을 알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뜻에 있는 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 세력을 가진 애굽의 힘에 소망을 두었을 때에 앗수르에 의해 패망을 하게 됩니다.

애굽이 힘은 있었지만 자기 나라와 북왕국을 도와 앗수르를 이길 힘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을 때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뜻에 소망을 두기에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바로 이 소망을 가진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2. 자기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어렴프시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 간증이 부럽기만 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은 믿습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를 자기 자신의 삶에 적용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희생을 자기 자신의 삶에 적용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겸손을 자기 자신의 삶에 적용합니다. 경건의 모양을 내기 시작하면서 경건의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해 갑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란 부르신 이유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서 믿음의 선배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 믿음의 본을 따라 해보니 그 믿음의 선배들의 삶 속에서 누린 경험을 공유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가정에서,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경험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나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이었던 하나님이 구체적인 나와 관계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비밀이 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점점 더 자기 자신과 구체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이 그저 성경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삶 속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실감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기도도 이제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사역자들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사역이 얼마나 넓고 깊은 지를 깨닫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미국 교회에서는 장학금을 주고 그 학생을 위해 끊이지 않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곳에 오는 익투스의 젊은이들의 명단이 이미 와 있습니다. 사명을 가지시는 분들은 아마도 저에게 명단을 달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미래의 교계와 나라의 지도자들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아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5절)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점점 깨닫고 알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용하시는 것이지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이 성숙해져 가지 못하는 이유와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돕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세상에서는 도와준 곳에는 항상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무의식적으로 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도움이 필요해서 우리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을 누리게 하기 위한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홀로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 영광과 사역의 기쁨에 초청하십니다. 그 초청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순종을 통해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누리는 것에 대한 초청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사역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한계로 못하는 일을 도와주십니다. 인간의 한계로 알지 못하는 일을 도와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잠간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계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은 한결같이 혹은 영원히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3,4절) 방백이라고 하면 권력이 있는 권력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방백도 한계 된 인생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도와주려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가 않네” 그러나 도와주던 사람들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심판 주 하나님은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은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해 판단하는 인간과 달리 공의로운 판단을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약자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자기 도움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도움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5절)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자기 자신과 관계를 구체적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을 누리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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