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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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 2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1 : 1 - 12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환경과 상황과 조건에 의해 살아가는 삶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행 따라 살아가는 삶들입니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굶고, 그리고 먹고 사는 일에만 급급하며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 세끼 먹다가 잠자고 사람이나 만나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하다가 하루를 보내며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시간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목적이 없이 살아가거나 목적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목적에 맞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있으면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투자합니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면 그 일에 모든 것을 맞춥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이 목적이면 그 일에 모든 것을 맞추게 됩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을 쓰신 이유도 세상에 목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제대로 된 목적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안타까움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가 인생을 진정으로 보람과 의미를 누리고 살아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복음을 손상시키는 거짓 선지자들이 침투해 있어 복음이 훼손당하고 있기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서두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의 서두는 대부분이 부드러운 인사로 시작되는데, 갈라디아서는 처음부터 사도바울이 강하게 자기 자신의 사도 권을 강조합니다.

율법주의자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구원함을 받지만 율법의 표징인 할례를 받아야 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이 침투했습니다. 바울의 사도 권을 부인하며 사도 바울을 통한 복음에 의심을 가짐으로 복음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하는 복음의 방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혹이 다가오면 자기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1647년 영국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모여서 그동안 함께 의논하여 만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게 됩니다.

이 신앙고백서에 근거해 문답식으로 만든 두 문답의 고백서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것이 196문항으로 된 웨스트민스터 대 요리문답과 107문항으로 된 웨스트민스터 소 요리문답입니다.

제 1문항의 질문은 이러합니다.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영원히 그를 즐겁게 하는 인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1.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입니다.
인간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은 사람들에 의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며 생각하는가에 의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물론 좋게 생각받기 원합니다. 그래서 핑계와 변명도 하게 되고 위선도 하게 됩니다.

꾸미기도 하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인정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무시당하면 괴로워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기에 은혜를 누리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합니다.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에게 나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삶에서 하나님에게 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삶임을 알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삶임을 알고 살아가는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삶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자신이 사도됨이 사람들이 준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자기자신의 사도권의 출처와 그 형성과정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자신이 사도된 것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고난 가운데서 누리며 전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에서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는 근거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루살렘 공회에서 바울을 사도로 인정해 준 것이니 사람에게 나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나 하나님의 사도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실제적으로 바울은 다메섹 선상에서 찾아오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방의 도구로서의 사명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준 것이라 착각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사람들이 임명한 것이기 하나님과 관계없이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마음에 맞는 대로, 자기 자신이 인정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으로 사역자 유무를 가립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역의 즐거움도, 협조도, 사역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체험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 하나님이 주신 사역자,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사역 지임을 알고 섬기는 그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오늘 움직이는 삶의 현장이 하나님께서 주신 현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사명을 주신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 무엇일 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입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을 좇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궁극의 목적은 복음을 알고 믿어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용서의 은총을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다 사실입니다. 이 복음을 변하게 만드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우선으로 하는 신앙생활들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거나 누리게 하기 위한 수많은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만든 수많은 방법들입니다. 그 방법들이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우선이 될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복음이외의 것들이 복음을 앞설 때에 복음은 다른 복음이 됩니다.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복음을 훼손시킨 갈라디아 교회들처럼 말입니다. 혹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이외에 다른 복음을 믿고 살아가지는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기 위한 법궤가 우상화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겠다고 세부적으로 만들어 놓은 장로의 유전이 우상화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누리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입니다.

혹시 신앙태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고 있지 아니한 지 점검해 보십시오. 어떤 교회는 셀 그룹을 목회자가 무리하게 강요하다가 교회가 혼란 속에 들어가는 경우들을 봅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를 무리하게 건축하다가 혼란 속에 들어가는 경우들을 봅니다. 복음이 인도하는대로 가야하는데, 복음 이외의 것이 인도하는대로 가는 교회들의 결국은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절) 하나님께 좋게 하는 것은 복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공의와 사랑이 대립되는 것 같은 경우, 어느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좋은 것인지 혼돈이 오는 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배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한 영안이 열릴 때만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다름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기에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무한하기에 소망을 줍니다. 어느 고난을 당한 성도가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지혜를 찾습니다.

자기 자신의 지혜로 그 고난을 이길 방법을 찾을 때에 앞이 막막해집니다. 방법이 없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맡기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삶에는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고난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 확신이 고난을 인내하며 이겨내는 힘이 됩니다. 그 이겨내는 모습과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대화가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경우들 가운데 이웃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도해보지 아니하고 하는 경우들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사랑하는 성도에게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도가 그 권면으로 인하여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 성도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사랑해서 한 것이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문의하며 살아가는 자체가 기도하는 삶입니다. 신앙의 공동체로 모여서 모두 은혜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은혜의 사역은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는 데 있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라서 택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택하셔서 가치있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제 1문항의 질문은 이러합니다.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며 사역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하여 그 목적을 바로 잡고 살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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