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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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26일          부은 바 된 사랑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5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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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전쟁이나 그 밖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오늘의 나라가 그들의 희생을 통하여 있음을 되새기는 현충일 즉 Memorial Day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희생한 분들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다면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평화와 안전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그분들의 은혜를 누리는 자의 삶이 됩니다. 희생자들이 자기 자신들에게 대가 없이 준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난 해 Block Party때 6.25참전 용사들을 모시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수고로 참전용사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과 함께하는 뉴러셀 장로교회에 회의가 있어 참석했던 노회 총무이신 수잔 앤드류 목사님이 그 광경을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음을 노회석상에서 발표하심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과 함께하는 중환자들과 연로하신 분들의 음식을 제공해주며 섬기는 자선단체인 Meals on wheels의 모금 파티에서 저희 교회에 감사장을 주시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수요예배시간이라 갈 수가 없으며, 저희들이 감사를 받은 만큼 해드린 것이 없다고 사양했습니다. 회장되시는 분이 바로 지난 해 Block Party할 때의 6.25참전용사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던 여러분들의 섬김에 깊은 감동받은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매번 기억하고 찬양과 예배 그리고 언어와 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은총을 받고 누리는 것에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배를 제대로 알고 드리고 있는 지 점검하며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8절)

여러분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고, 예수님을 여러분을 위하여 죽이심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을 누리고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그 사랑의 누림을 감사의 드림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신 그 사랑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1.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신 때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6-8절)

아직 연약할 때, 경건치 않은 자일 때 그리고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지혜와 능력이 있어서, 자기 자신이 경건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고, 확증해주셨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들입니다.

이것이 누리고 나누는 데도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부은바 된 사랑을 누리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첫째로 자기 능력과 힘으로 그 사랑을 누리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미 그 사랑이 마음에 부은 바 되었는데 자기 자신은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자격을 갖춘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올바로 아는 자에게 부어주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자기 자신이 능력이 없음을 알 때,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알게 되고, 느껴지며 자기 자신의 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알 때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게 됩니다.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알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알 때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며 그 지혜를 누리게 됩니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계시기에”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로 자격을 갖추고 누리려고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려는 일들을 자기 자신의 자격으로 하려고 할 때입니다. 청빙을 받거나, 공천을 받을 때에 자기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어다 보면 겸손인 것 같지만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안들을 때, 자기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이 구설수에 오르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것이 두려울 때에 기피하게 됩니다.

그 중심은 자기 자신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가 무엇이 되어 하려고 하는 자체가 교만이다” “내가 하는 것이지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네가 할 수 없는 풍성한 것을 누릴 수가 없단다”

과연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존귀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가? 하나님에게 사용되려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용하려는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 않는 지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용하시기 위해 부르신 것이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용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 자신이 인생을 살아간다고 교만한 그 때, 자기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살아가며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 때에 주님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의인이었을 때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경건했을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하는 죄인이었을 때도 하나님은 부어주셨습니다. 엄청난 잘못했을 때도 하나님은 부어주셨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누게 됩니다.

사형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그 은혜와 감동 속을 살아가다가 장기 모두를 나누어 주고 사형장에서 천국을 찬송하며 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누리는 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다른 신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입니다. 자기 자신의 섬김을 통해 얻는 은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사역을 통해 얻는 은혜가 아닙니다. 가족의 신앙으로 얻는 은혜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에서 얻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 어둠의 자식이었던 우리들, 진노의 자식이었던 우리들, 자존심 덩어리였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면서 우리들이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그 사랑을 부어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하며 즐거움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던 삶을 불만과 불평 속에 슬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관리자로 살아가야 함에도 에덴에서 쫓겨나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살아가던 인생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 용서의 은총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기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은혜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나눌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2-5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부음을 확신하는 자입니다.

삶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고 누릴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됩니다. 소망 가운데 거하는 자, 하나님을 믿기에 영광의 소망을 가지기에 실망과 좌절을 하지 않습니다. 환난 중에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평소에 믿음이 있었던 같이 보이던 교우들이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극단적인 절망의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 그 믿음은 어디에 있는 가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확신은 소망이 있기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

그러면서 믿음은 더욱 더 성숙되어 가고 성장되어 갑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의 현장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투병합니다. 이웃은 걱정하고 염려하며 측은해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온유함과 평안함이 깃듭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 믿음의 인내의 결과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더 풍성히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더 풍성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 고난에 포로가 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기 자신은 곧 죽을 것 같은 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면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투병해 나갑니다. 육체적인 아픔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아픔 그리고 영적인 고통 속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멀리하며 믿음은 더욱 더 사라져갑니다.

왜 같은 고통 속에 이렇게 다를까? 그리고 그 결과 속에 유익함을 얻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받은 복 있는 자가 우리들입니다.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연약할 때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랑 받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그 사랑 누리고 나누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즐거움에 감사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가운데 나가시는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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