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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12일           진정한 효도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잠언  23 : 22 - 25
부모님이 살아계셔 함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한국에나, 타주에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안 계신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계시던 천국에 계시던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이 더욱 더 이해되고 그리워져 갑니다. 그리고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싸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에 자주 해주신 음식들이 먹고 싶어지는 이유도 그리워하게 되고 그리워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효사상이 동양의 미덕으로 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동서고금,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효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효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10계명 중에 인간간의 관계에 대한 말씀에서도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효에 관한 것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하면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부모를 업신여기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된 모습은 자녀들의 부모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생긴다는 것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부모가 물질이 없으면 자녀로부터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시대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이 이 세상에 안 계시건, 이 세상에 계시건 간에 그리고 어디에 계시건 간에 부모님에게 효도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일 까? 부모에 대한 진정한 효도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도 비유되는 관계인데 진정한 효도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22절) 아비에게 청종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은 결국에는 자녀 사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에게 평범한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녀의 건강이 중요하다고 좀 더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서 잘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마음이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몰라서 할지 모르지만 알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회에 빛을 증거하며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 가운데 부모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듣고 따르며 배우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뜻을 순종한다는 것은 부모님께서 자녀에게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녀들이 결국에는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도 부모에 대한 죄책감의 원인을 배우자에게 찾으면서 결국에는 가정불화로 나아감으로 부모의 가슴에 더 큰 아픔을 주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특히 부모님과 이 세상에서 헤어진 자녀들, 죄책감에 배우자와 다투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헤어지는 경우들도 주위에서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진정으로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인 사랑과 화목을 외면하여 하나님이 아프시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2. 부모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22절) 예전에 힘이 있던 부모님이 힘이 없어집니다. 연로해지시는 모습입니다. 은퇴하면 경제력이 약해집니다. 육체적으로도 기력이 쇠하여집니다. 지적으로도 잊어버리며 급변하는 것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이럴 때에 자녀들은 성장하여 돈을 벌고, 지식도 풍성해져가고, 힘도 세어져 갑니다.

이러한 경우에 자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를 가볍게 여기기 쉬워집니다. 이것이 부모들에게는 섭섭한 마음, 무시당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배경이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학력이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재력이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가문이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용모가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가 이웃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부모의 해놓은 업적도 아닙니다. 부모는 자기 자신의 부모님이시기에 존귀해야 합니다.

부모는 바로 관계에 의해 존귀해져야 합니다. 신앙인들의 진정한 효도는 신앙인다운 삶을 자녀들이 살아가는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의 본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들이 흔합니다. 중심이 잘못된 신앙생활, 즉 자기 유익을 위하여 신앙을 이용하는 경우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물질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을 것임에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자녀들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르반제도를 악용하던 바리새인들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고르반 하면 헌물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입니다.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 자기 자신이 가진 물질을 고르반이라 선언하고 부모님을 봉양하지 않으려는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마음은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사실 부모도 알고 계십니다.

효도 즉 부모님의 말씀 즉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로 존귀하신 분이기에 순종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25절) 부모님이 궁극에 즐거워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봅니다. 의인의 아비, 지혜로운 자식에서 힌트가 있습니다. 진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인 부모라도, 신앙인이 아닌 부모들도 만일 사후 세계에서 자녀들을 바라본다면 결국에는 신앙일 것입니다. 영원한 즐거움은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가장 잘 되는 것은 자녀들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바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 삶입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23절) 진리를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다른 말로 말하면 진리를 얻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값진 것들은 인간은 모두 공짜로 얻었습니다. 생명은 주신 것이지 우리들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숨쉬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 하나님께 돈 내지 않습니다. 사는 날까지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때에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로 관리하는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자그마한 것을 주는 것이지 근본적으로 공짜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함을 받는데도 하나님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면서도 우리 자신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이미 그 대가를 치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을 받았으면 이 사랑을 버리지 말라는 의미가 사고서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리면서 그 사랑을 나누는 진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입니다. 부모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세상 연락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안타까움이 없다면 부모는 세상의 부모이지 그리스도인의 부모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가 보는 것일 것입니다. 부모의 진정한 즐거움, 자녀의 영혼이 잘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고 신앙유산을 남기려고 애를 쓰는 이유가 바로 자녀들의 영혼이 잘됨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연락을 누려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이 모른 다하면 그것이 진정한 비극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효도는 복음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그 진리를 전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 안수식 때 저의 안수과정을 함께하며 자문해 주시던 게렛신학교 교수님이 안수직전에 집례자인 팔머 목사님에게 긴급요청을 합니다.

저의 아버지를 안수위원으로 위촉해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집례자가 안수위원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네’라고 대답을 합니다. 어느 목사님 한분이 아버님을 모시고 올라와서 같이 안수에 동참하게 합니다. 아들이 안수 받음도 즐거워하셨지만 아들이 주의 종들과 교우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보며 어찌나 즐거워하시는지를 보며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곳에 진정한 효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건, 이 세상에 안 계시건 부모의 자녀 사랑은 영혼이 잘되어 의미와 보람이 있는 인생을 자녀가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곳에 진정한 효도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삶 속에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애를 쓰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의 뜻을 따르고 부모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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