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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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5월 5일           믿음이 있는 곳에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마태복음  18 : 1 - 6
고국에서는 오늘을 어린이날로 지킵니다. 한인 이민교회에서는 어린이주일로 지키면서 어린이들에 대하여 생각하며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그 다짐을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드립니다. 어린이들은 부모를 통해 신앙적 영향을 받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 그리고 영적인 부모인 교회 어른들을 통해 영향을 받습니다. 어느 손자가 할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낸 후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은 얼마나 할아버지께서 하나님과 주변의 사람들을 위하였는지 보여주셨다”

어느 손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삶에 할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으며,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어느 손녀딸이 장성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신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내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 주셔서 오늘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선교지에서도 학교를 설립할 때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복음을 전하기에 아주 적절한 시기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부터는 자기 생각이 많이 정착되어 쉽지 않다고 선교사님들은 말합니다. 어느 젊은 청년이 어릴 때 다니면서 다니기 싫어하고 힘들어 했던 주일학교가 제대로 양육한 주일학교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힘들어했던 요절 암송이 젊은이가 힘든 순간에 떠오르면서 그 말씀으로 극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성하여 어린 시절의 부모나 조부모의 삶이 자기 자신의 삶 속에 스며들어 온 것을 알게 됩니다. 말로 행동이 영향을 주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어린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가? 바로 믿음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모습은 어린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두 번이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관심은 온통 명예욕, 권력욕 즉 자기들 가운데 누가 크냐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급기야는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기는 아는 데 예수님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정치적 메시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교회에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삶으로 말과 행동으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과연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며 살아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린이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삶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과 주변의 것들로 인하여 본능적으로 거짓된 삶을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꾸미며 가장하며 자기 실체를 감추는 삶입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실체가 감추어진 삶을 살아갑니다. 신앙은 자기 실체를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자기 자각 즉 영적 자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감각이 살아날 때만이 자기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연약한 인간인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가 큰가 라는 경쟁을 하며, 그 힘과 명예를 탐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는 순간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심령에 다가오지 아니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힘과 명예에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다가오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실체를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원하며 진리를 말씀하고 있지만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족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떠나지 못하니 그 수고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기도를 하는 것도 그리고 사역을 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의 힘과 명예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립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열심히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실물 교육을 하시는 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 무시당하고 힘도 없는 어린아이 하나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3절) “너희가 돌이켜” 먼저 제자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돌이켜는 돌아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회개의 촉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조물주인줄 알고 살아가던 인생이 연약한 피조물임을 알고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착각하던 인생이 온통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주권자가 아님에도 주권자 행세를 하였음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심판자가 아님에도 자기 자신과 주위에 사람들을 심판하고 정죄하며 살아가는 삶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꾸미지 않고 무지함과 무능함을 깨닫기에 주님 앞으로 나아감을 보여주는 것이 정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2.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5절)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되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됩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집무실에 백기를 꽂아 놓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기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던 어느 장관이 출장 중 주일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토요일 귀가를 서두른 이유를 알고 감동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낮아지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어린 아이들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춘 겸손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의 생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단순해집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단순해집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 만에 초점이 있기에 단순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살피기에 단순해집니다. 이웃과 경쟁하며 자기 자신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기에 단순해집니다. 단순함이란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이 가져다주는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 어거스틴에게 묻습니다. 신앙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입니다. 바로 겸손의 그릇에 은혜와 사랑을 담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린 아이들은 관계 안에서 믿습니다. 어린 아이들의 믿음은 단순한 믿음입니다. 부모의 능력을 알아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가자면 먼저 앞서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것을 알기에 믿는 것입니다. 부모가 보호하는 것임을 알기에 믿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부모인지 유전자 검사를 하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 같이 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양육되어 가는 삶, 즉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육 받는 삶을 말합니다. 바로 이 믿음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소외된 이웃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5,6절) 그 당시 어린 아이들은 무시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소외 되고,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삶 속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며 연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유익되는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는 소외된 사람, 무시당하는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자는 연약한 사람들, 억매여 있는 사람들을 품으면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러한 세상 적으로 연약한 존재를 영접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엄청난 죄임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소자 중 하나를 실족시키면 엄청난 범죄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혹시 복음의 장애자가 되고 있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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