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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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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17일            해로 여기는 이유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빌립보서  3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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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살았던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가지 않으면 출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도 게으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던 열심히 예배에도 참석하고, 교회 일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통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가를 질문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출세하여 세상적인 행복을 맛보며 이웃과 나누는 사람들 있는 가하면 출세하여 도리어 불행하게 되는 경우들이 더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마음 것 누리는 가하면, 열심히 하며 도리어 불행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삶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율법적 유대주의자였습니다.

열심히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예수님의 사도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바울이 옛날의 자기 모습을 회상하며 육체를 신뢰하는 율법 주의적 유대주의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인 자기 자신이 다른 가치를 들을 왜 해로 여기는 지를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먼저 율법주의 적 유대주의자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가치를 자기 자신이 다 가지고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유대 적 혈통에 율법적 지위와 율법적 열심을 다 하였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택된 명문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사울왕의 후손인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지식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 율법학자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힘 있는 부유층에 경건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파였으며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그 열심 있는 신앙생활의 표출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명문, 권세 그리고 신앙생활을 열심 하던 사도 바울이 이 모든 것을 해같이 여기며 배설물로 여긴 이유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배설물이란 버려지는 음식 찌꺼기로 개들에게 주는 물질을 의 미합니다. 자기 자신이 노력하고, 자기 자신이 주어진 세상에서 귀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놓고 주를 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력한 것이 아깝고, 보낸 세월이 아깝고, 그 가진 것을 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비밀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를 아는 일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7,8절) 인생은 자기 자신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 그 행복해 지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가지기 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는 수많은 쓸데없는 지식을 모으는 데 열심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부모들은 학문의 지식보다도 스승의 인품을 배우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학문은 평생을 하지는 것이지만 스승으로부터 그 학문을 연구하는 인격과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데 가장 고상한 지식이 무엇일 까? 자기 자신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배움의 목적이다”라는 말을 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라는 분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내려놓음’과 ‘떠남’이라는 책을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서울대와 하버드 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공부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지로 떠난 분이기에 모두가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하며 그 내려놓음과 떠남에 놀라움과 존귀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책들이 더욱 깊은 감동으로 돌아오는 이유입니다. 몽골선교를 마치고 모슬렘의 나라인 인도네시아에 기독교 학교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만 수술을 하게 됩니다. 바로 올해 1월에 병상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며 함께 병상에 있는 환자들을 축복할 수 있는 비밀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계신 이용규 선교사에게 기자가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지요” 이 선교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분은 선하디 선하신 분이시지요. 그분을 생각만 하면 정말 감사합니다. 그 분의 선하심을 자꾸 맛보아야 합니다. 그 선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함이 재산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성경에 나와있잖아요. 일단 맛을 보고 나면 중독성이 있기에 계속 그 맛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중독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알려고 하는데서 떠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기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경험해보려는 시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알려고 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이웃과 나누지 못합니다. 이러한 앎에서 떠나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떠남은 자기 자신을 자유로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세상에 의해 형성된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과 안전이라는 집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자유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에서 떠나는 일입니다. 믿는 자들의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주위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감동과 은혜를 함께 누립니다. 명문대학과 명문대학원을 나와 고액 연봉을 받고 살아가다가 힘없고 불쌍한 소외받은 사람들에게 자꾸 관심이 가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다니던 유명한 회사와 고액 연봉을 떠나 그들과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를 통해 많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 젊은이를 통해 수많은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포자기하고 인생을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려운 학업과 어려운 수련기간을 마치고 뜻이 있어 헐벗고 굶주린 그 땅으로 의술을 들고 가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고귀한 가치를 알았기에 내려놓고 떠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입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8,9절) 자기 자신에 있던 세상적이고 율법적인 가치관에서 귀하다고, 성공했다고 하는 것들을 잃어버리거나 개들에게나 주는 음식물로 여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함께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0,11절)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무에 그리스도인의 가지가 되어 접붙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오직 예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죄가 용서된 칭의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통해 의롭게 된 그 은혜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귀중한 물건을 배에 싣고 가다 풍랑을 만납니다. 이 때 선장이 말합니다. 그 물건들을 버려야 우리들이 살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버리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보다도 그 물건이 더 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물건들을 배 밖으로 버림으로 풍랑에서 이김으로 무사히 도착했다면 그 산 기쁨 즉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톨스토이가 말한 대로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우리들은 복음 이외에 더 큰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음을 살아가면서 더욱 더 실감해 나가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를 않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된 부름의 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14절) 미국 네쉬빌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다가 고등학교 때에 우간다에 갔다가 고아들을 양녀로 삼고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23세 케이티 데이비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척박한 땅 즉 풍요로운 미국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땅에서 뼈 속에서 구더기를 꺼내주고 토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어린 생명들을 돌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의 삶과 영원한 운명을 바꿔놓고 있다. 이만하면 내 인생을 통째로 걸만한 가치가 있다” 부르심의 상은 생명의 면류관인 동시에 이 땅에서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기쁨입니다.

바로 이것을 추구하고 쫓으려면 가장 고상한 가치인 영생의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은혜를 누리는 삶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려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부르신 모든 자 안에서 부르심의 목적을 알게 하시고 그 부르심에 순종해 나갈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은 죄성으로 인하여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하셔야 할 일에 관심을 가짐으로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복음의 씨 그리스도의 사랑의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의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명령하셨는데,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까? 의심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몫이고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단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되는 것임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알려하고 있고, 무엇을 좇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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