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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3일            관심의 대상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출애급기  34 : 29 -
35
지난 금요일은 3월 1일로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 사건을 기념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 행한 것을 생각하면 일본에 대한 원망과 원한이 있게 됩니다. 한일전을 하면 한국 팀이 이기지 않으면 선수들이 욕을 먹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6.25전쟁과 북한의 행위를 생각하거나, 북한의 테러를 생각하고 탈북자들의 아픔과 고난, 그리고 북한의 인권과 주민들의 굶주림 그리고 독재를 생각한다면 북한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하는 말과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의 홍수가 났을 때 죄의 대가라고 말하는 신앙인들이 있었고, 일본의 쓰나미가 났을 때 죄의 대가라고 말하는 신앙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발언에 기독교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언행들이 복음의 빛을 가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그 아픔을 겪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가 하면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 특히 아픔을 겪는 성도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무심하게 함으로써 아픔 속에 있는 성도를 더 좌절과 낙망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경우들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고난이 생기면 마치 죄가 있어서만이 그런 것 같이 언행을 함으로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 사람들을 좌절하고 낙망하게 하면서도 전혀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면서 지내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은 자기 자신이 고난을 당하지 않기에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보다는 자기 자신만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음으로 회개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페이슨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 더욱 타락한 것이다. 베드로처럼 부인하는 것은 나쁘다.

그러나 부인을 하고서도 통곡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은 더욱 나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빌라도에 의한 로마 군인들이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을 피살한 사건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 면 어느 유월절에 3천명, 2만 명이 참살을 당하는 엄청 난 사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AD 70년 예루살렘은 전체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유월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이용하여 독립을 위한 민란이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성전기금 유용해서 만든 수로의 일부였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사건과 포도원에 심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에 비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회개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모두가 회개가 필요한 사람인 죄인입니다.
사람이 죄인 됨이 나타나는 여러 현상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이 비교하는 일입니다. 신앙은 절대적인 것에 관한 것인데 상대적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신앙은 이웃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신앙의 영역에서는 떠나게 됩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죄는 자기중심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 있습니다. 태초에 처음 죄를 지을 때에 사탄인 뱀이 인간인 이브에게 다가와 유혹하는 핵심은 하나님과 비교하는 일이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2:4,5)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은 이브가 하나님과 비교하여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비교에서 나오는 유혹입니다.

바로 그 유혹이 죄를 범하게 만들어갑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이웃과 비교하도록 유혹해 갑니다. 그 예는 사울이 다윗을 비교하는 것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만만’, 사울을 ‘천천’으로 비교하자, 자기 자신을 다윗과 비교하면서 질투가 생기고 결국에는 살의까지 가지는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됩니다.

사울이 바로 기름 부음을 받은 하나님이 세운 왕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신앙의 열등감 혹은 신앙의 교만함이 생기게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사람들의 참사와 실로암 망대의 18명의 죽음을 죄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들은 회개하는데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인과론적 형벌론에 빠지는 경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 의한 로마 군인들이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을 피살한 사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2절)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18명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4절) 유대인들에게 모두가 죄인임을 알라는 것인 동시에 인간 모두가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5:10-12)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의 은총은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 없는 은혜의 경험도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 없는 구원의 기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회개함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용서의 은총을 누릴 수가 없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5절)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 자신에게는 해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여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의구심입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고난이 우리 자신에게는 안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설마 나에게도 해당될까라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성경 전체를 걸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회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하는 필수 요건입니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 깨닫고 해야 하는 필수 사항입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영생에 관한 문제입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이 천국을 가느냐 아니면 지옥에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물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는 회개는 자기 자신의 생명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삶에 생기에 관한 문제입니다. 죄를 감추며 산다는 것은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죄책감에 생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의 구원의 기쁨에 관한 문제입니다. “왜 신앙인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자기 자신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아니면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적용하고 비춰보려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착각 속에 살아가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저울질하며 신앙이 있다, 없다 수없이 말하지만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하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영혼은 썩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3. 회개의 촉구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에 심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회개의 기회가 영원히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인간이 회개의 촉구를 그냥 보내는 이유는 욕심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포도원에 포도를 심어야 하는 데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역할이나, 자기 자신의 영역, 자기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관심이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을 때에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주신 인생을 살아가지 않는 곳에는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과수원 주인은 과수원 지기에게 3년의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 동안에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에는 찍어 버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과수원 주인은 하나님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과수원 지기는 3년의 기회를 주면 자기 자신이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열매를 맺게 하겠다는 간청입니다. 회개의 촉구는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회개를 통하여 열매는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즉 우리 각자의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회개하는 이유는 성령의 열매, 복음의 열매들을 삶 속에서 누리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의 입성하고 천국의 맛을 누리게 하기 위한 기회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마을에서 항상 술에 취해 있으면서 인생을 저주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를 보며 사단의 얼굴이 있다면 저 젊은이의 얼굴이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교회에 성가대에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며 찬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천사의 얼굴이 있다면 저 사람의 얼굴 이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 교회 교인으로부터 동일한 인물임을 알게 됩니다. 타락한 삶을 살아가던 사단의 얼굴과 같은 얼굴을 하고 살아가던 그 젊은이가 주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용서의 은총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때에 그 얼굴은 어느 새 천사의 얼굴과 같은 얼굴로 변해 간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가 은혜의 빚진 자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로 살아가면서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게 분명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들을 예수님의 사랑에 초청하십니다. 그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달아야 용서의 은총을 알기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회개는 항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이미 늦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치면 끝나게 됩니다. 사순절!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마시고 자기 자신의 마음, 자기 자신의 영 그리고 삶을 점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끽하면서 부활의 기쁨 즉 구원받은 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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