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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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24일          여로와를 바랄지어다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시편  27 : 1 - 14
불완전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현실을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가려니 힘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는 말이 맞습니다. 이 때에 자연스럽게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불안감, 보이지 않는 공포 속을 살아가게 됩니다.

전쟁터의 병사가 소원이 무엇이냐는 종군기자의 질문에 내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이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군인은 상황 속에서 그저 우리들 보다 조금은 빠르게 느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서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완전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곳에는 자기 스스로 만족할 수 없기에 불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에도 해야 한다는 착각에 불평이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고난이 찾아오면 이 불안감, 불만 불평은 더욱 더 심해져 가게 됩니다. 그것도 반복되는 고난은 인내의 한계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을 견디지 못하다 보니 그 고난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자기 자신이 살아보려고 애를 쓰든가, 아니면 자책감에 못 이겨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러한 고난을 겪으면서 오히려 승리의 기회를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우리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등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들 주위에서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나 같으면 살 수 없었을 텐데, 저 평안과 기쁨은 어디에서 나올까?”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바로 고난을 승리의 기회로 삼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삶입니다. 다윗의 삶! 얼마나 많은 고난의 연속의 삶을 살았습니까? 셀 수없이 많은 세월을 쫓기는 신세로 살아간 다윗입니다. 장인인 사울 왕에게 쫓기고, 아들인 압살롬에게 보는 앞에서 계모를 겁탈하는 것을 뒤로 하고 쫓겨나기도 합니다. 수많은 부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며, 수많은 살해의 위험 속을 걸어간 인생입니다. 범상하지 않는 고난을 당하여 폐인이 되어야 함 에도 불구하고, 범상하지 않은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삶의 모든 순간순간을 승리의 기회로 삼습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나 모든 것이 안될 때 모두를 하나님을 아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것이 지혜자의 삶입니다. 다윗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이 무엇이든지 승리의 기회로 삼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1.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의 현실은 다윗의 대적이 다윗의 살을 먹으려고 다윗에게로 왔던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막강한 힘으로 온 것을 군대로 표현합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 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 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3절) 두려움과 무서움이 엄습해 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상황입니다. 어둠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앞이 깜깜하고, 죽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두렵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다는 고백을 다윗은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방법은 세상과의 방법과 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런 환란에 인생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상황과 조건 그리고 보이는 인간적인 방법에 눈이 고정되기 쉽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그 고난의 상황과 조건으로 뒤덮이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다가온 고난은 삶을 어둡게 만들어 갑니다. 그 어둠을 가져다주는 상황과 조건을 모면하고, 해결하는 일에만 온통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고난의 상황과 조건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주위에 것이 보이지 않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웠던 것들, 의미가 있는 것들 그리고 귀중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더욱 더 볼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알고, 피조물의 한계를 아는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의 눈으로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그 상황과 조건을 맡기면서 그 해결을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7절) 부르짖음은 대강 형식적으로 하는 간구가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구를 해야 합니다.

현실의 애절함을 부르짖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본인이 고난의 실체를 알고, 자기 자신이나 피조물이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가?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어둠을 물리쳐 주실 “자신의 빛”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을 밝게 비추기 때문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비출 때에 어둠을 물리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해 주실 “자신의 구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사랑을 믿을 때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능력” 즉 피난처가 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자기 자신을 보호해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 하실 까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 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1절)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간구는 먼저 신앙고백을 하는 자만이 할 수 있게 됩니다. 믿지도 않는 간절한 간구는 그저 해보는 넋두리나 그저 해보는 하소연에 불과하게 됩니다.

먼저 확실한 믿음에 거하면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믿음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며 교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을 구하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를 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4절)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게 하나님의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사모하게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간구의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을 경험을 통하여 찬양하고 경배 드리는 일이 목적이 되는 삶입니다.

사실 진실한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해결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고난을 맡기며 그 뜻을 찾아 나갈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시는 것을 간구하며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해야 합니다.
구원을 향한 절대적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것들의 성취를 미리 바라보고, 그 믿음의 눈을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거두게 됨을 확신해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일의 성취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통한 은혜의 확신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일은 드물게 됩니다. 물론 타락한 현실에서는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절)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근거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확신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볼 것을 믿게 됩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13절) 바로 이러한 은혜의 확신만이 미리 고난이 복이 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갇혀있던 사도 바울이 옥중서신 가운데 자유와 기쁨을 이야기할 수 있는 비밀입니다.

신앙인들이 고난가운데 담대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어떤 고난의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십시오.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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