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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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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17일          마음으로 믿어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로마서  10 : 8 - 13
교회에 다니면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도 복음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설교도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서적도 복음에 관한 것이며 찬양도 복음에 관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자신이 영생을 얻었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인 용서의 은총을 받아 영생을 얻은 복된 자가 우리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없습니다. 복음은 영생을 얻기에 기쁨의 소식이라 말합니다. 아마도 수없이 듣고 또 듣고 그리고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이 복음의 소식을 듣고서도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거나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무엇인가 안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아직 어린 믿음에서 머물고 자라나지를 못한다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 우리들이 이 세상을 마감할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 예수님이 오실지도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될지, 아니면 내일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복음의 소식을 들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복음의 기쁨을 자기 자신이 누리면서 이웃에게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데, 어떤 사람은 복음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증거 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먼저 그리스도의 말씀에 관한 것을 듣는 것에서 믿음은 시작됩니다. 복음에 대하여 안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안다는 의미를 살펴봅니다. 머리로 아는 경우는 상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느낌으로 아는 경우는 감정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습관으로 아는 경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자동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경험으로 아는 경우는 복음을 실제의 삶에서 체험하며 알아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여 주시는 것을 삶의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지정의를 가진 인격을 가진 마음으로 알아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누리고 나눌 수가 있어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성숙한 신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살펴봅니다.

1. 무엇을 믿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8절)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9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절)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지정의를 갖춘 인격으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의미는 먼저 무엇을 믿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8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믿는 이유는 영생의 은혜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영생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앙인들은 이를 알기 위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 즉 이를 알기 위한 도구와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에 관한 관심은 많아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는 데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아니합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구약을 공부하고, 신약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성경의 지리적, 문화적 그리고 성경의 인물들을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자기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대상과 알고자 하는 대상을 잘못 정하고 관심을 가지기에 이미 믿음과는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당연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나눌 수가 없게 됩니다. 결국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일을 떠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신앙생활에 손해는 당사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 무엇을 믿는 지를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알게 되면 교제가 시작됩니다. 즉 자기 자신과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심령에 감동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들이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을 길러주셨다는 것도 지식으로 알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도 지식으로 알게 됩니다. 부모님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고생하셨다는 것도 지식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로 마음 속에 다가올 때는 철이 들었을 때입니다. 어린 시절에 어버이날 부르는 어머님의 은혜의 노래는 사실 입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이 들어 부르는 은혜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언제 부모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부를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 때에 철이 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 때에 철이 들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자랄 수가 없음을 깨달을 때에 부모님의 은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지와 무능이 깨달아 질 때에 주위에 자기 자신들과 함께하는 자들의 존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에 대한 고백이 은혜를 느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물론 부모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기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철이 들었을 때 비로소 그 베풀어 주신 은혜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의 회개가 없는 신앙이라면 결국에는 마음으로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회개가 없이는 용서의 은총을 자기 자신의 마음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실체 즉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자기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하는 자는 결코 용서의 은총을 느끼지 못합니다.

3. 무엇을 믿는 지를 결단하고 행하여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믿음에 대한 마음의 느낌은 입의 시인으로 나옵니다. 자기 자신이 믿고 느낀 감정으로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 형식이나 가식적인 고백이 아니라 실제적인 고백이 입으로 나오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절)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신앙고백을 하는 삶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증거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삶은 사실 목숨을 내 놓는 삶입니다. 그 당시 황제 가이사를 주라 칭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주라 시인하면 그 사람은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

마음에 감동으로 믿음을 고백한 앎은 언제 어디서나 입으로 믿음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순교의 길을 갈 수 있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느낌이 없었던 그저 머리로 아는 것에 그친 신앙은 입으로 형식적으로 시인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전혀 느낌도 없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합니다.

찬양을 할 때는 온 힘으로 찬양을 부릅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전혀 용서의 은총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시인이 없는 용서의 찬양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교회와 가정에서는 주로 시인하지만 일터에서는 입을 닫습니다. 교회와 가정에서는 주로 시인하지만 사회에서는 입을 닫습니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는 주로 시인하지만 남들이 없는 곳에서는 입을 닫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설정한 영역에만 계신 것으로 착각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변덕이 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는 주로 시인하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입을 닫습니다. 믿는 것을 결단하지 아니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기에 결국에는 은혜의 체험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요한 삶을 살아가지를 못합니다. 부르신 자녀들에게 부요함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누리지를 못합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머리로나 입으로만 믿으려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먼저 지적으로 믿고, 자기 자신의 실체를 고백하며 믿음의 은혜를 누리고 은혜의 빚진 자로서 결단을 통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주로 시인하는 삶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이웃에게 그 은혜를 나누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삶만이 믿음의 성숙을 가져오게 됩니다.

마음의 관심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가지십시오. 자기 자신의 실체를 돌아보면서 회개하며 겸손하게 성령의 감동을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의 깨달음을 삶의 현장에 순종하며 적용해 보십시오. 바로 이곳에 은혜의 체험과 믿음의 성숙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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