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
Korean Presbyterian Church of Westchester in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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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2월 10일          관심의 대상
설교 :     이태준 목사
본문 :     출애급기  34 : 29 -
35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매일 매일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도 모르며 살아갑니다. 그저 반복되는 삶의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변하고, 다른 것들이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아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살피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잊고 살기에 삶의 의미를 모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실제를 경험하며 실감하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러운 경험을 통하여 실제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될 때에 자기 스스로 살아온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에 자기 스스로 살아온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노력과 전혀 상관없는 어떠한 것을 얻고 경험할 때에 실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영적인 경험을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줄
때 하나님과 가까워지면서 하나님을 더욱 더 알아가고 경험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자기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면서 하나님과 멀어져가는 경우도 있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사탄이 쳐 놓은 함정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고 가까워질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신앙인들의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오늘 본문은 모세가 시내 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함을 보고 깨뜨린 두 돌판 대신에 두 돌 판을 만들어 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산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재 선포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과의 얼굴에서 풍기는 것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전에 보던 모세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물론 모세는 출애굽의 순간순간에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무엇이 되어야 믿음의 성장을 가져오는 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1. 하나님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도 신비한 경험을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만든 신비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세가 착각할 많은 상황과 조건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40일간 금식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는 인도자로 쓰임에 순종하는 사역자로서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모세 자신의 행위에 사로잡힐 때에 얼굴의 광채가 나는 것을 자기 자신이 만든 것으로 착각하게 되기가 쉽게 됩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은 모세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 빛이 나도록 계획을 세웠던 일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의 얼굴에 빛이 나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29절) 그러나 모세가 자기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남을 알 때에 말씀을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이유가 무엇일 까?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에 그 능력이나 상황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그 도구가 되는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일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광채 난 얼굴로 전하였지만 그 말씀을 마쳤을 때에는 모세는 얼굴을 덮습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33절)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려주기 위함임을 알 수 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던 지도자들이 넘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능력 있던 주의 종들이 섬기는 교회에 후임자들이 목회를 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자신화 할 때에 결국에는 영광을 가로채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꾸미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역자 것으로 착각할 때에 결국에는 영광을 가로채고 꾸미기에 다른 사역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전함을 막기도 합니다. 물론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유혹에 빠지게 됨으로, 자기 우상화를 시켜 나감으로 자기 자신이 피조물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그 대상에게 몰입하는 유혹에 빠지게 만들어 갑니다.

사실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임에도 그 귀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믿음이 성숙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통일교의 문선명도 예전에 열심히 있었던 안수집사였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문선명은 문용명이 본명이었던 사람입니다. 용은 사탄의 상징이기에 이름을 선명으로 바꾸게 됩니다. 자칭 재림주로 꾸미기 시작하고 통일원리를 만들고 세뇌시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저 자신을 위한 도구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신앙촌의 박태선장로가 만든 전도관도 이러한 예의 하나입니다. 박태선장로는 예전에 남산 야외 음악당에서 집회를 열수 있었던 능력있었던 장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 이들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멀어지며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 착각하며 자기 자신과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멸망의 길로 인도해 갔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수많은 이단들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자기화 시킬 때에 불행한 삶을 살아갑니다. 물론 극단적이지 않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신앙인들이 믿음의 성숙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임재하신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질 때에 믿음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늦더라도, 이 점검이 없는 신앙생활에는 믿음이 자라갈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에 교회 건물이 수없이 매물로 나왔다는 가슴 아픈 뉴스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보다도 건물의 화려함에 관심을 가질 때에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성숙되어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광채가 나는 모세가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광채를 주시는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만이 믿음이 성숙할 수가 있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자기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 이전에 먼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 관심의 중심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과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으로 나뉘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만이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고 숭배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3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며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기에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 갑니다.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지장을 받게 되는 경우, 상황과 조건에 갇혀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경우들입니다. 전하는 자과 관심의 대상이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관심은 차선이 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비밀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고 노력하며 순종할 때만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 말씀은 관심을 가진 것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고린도 후서에서 주안에서 해석해 줍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 3:13-15) 모세의 얼굴의 광채는 장차 없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그 얼굴의 광채만을 관심을 가집니다. 도리어 그 마음이 수건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지를 못하게 만듭니다. 이 수건을 벗겨주신 분이 계십니다. 이제는 그 수건을 덮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 만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는 자기 자신의 실체를 알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 3:16)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안에 거할 때에 그 수건이 벗어져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7,18절) 성령의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알고, 그 사랑을 알며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갑니다.

관심의 대상이 하나님이신지를 점검하십시오. 사역하기 전에 주안에서 하는 것인지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경험하기 전에 그것이 주안에서 경험하는 것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이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음을 모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관심의 대상은 개체 교회인 웨스트체스터 연합교회가 아닙니다. 관심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만이어야 합니다. 이곳에 진정한 믿음의 성숙되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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