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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월 6일          예스님께 무엇을 드리나요?
설교 :     서용정 목사
본문 :     마태복음  2 : 1 - 12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은 주현절의 첫 날 입니다. 이방인들 즉, 우리에게 메시아가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메시아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세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란 새로운 평화의 황금시대를 열어 자신의 민족을 번영시킬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보다 더 큰 계획을 세우신 것을 이스라엘 민족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분의 계획은 바로 온 세상을 구해 줄 메시아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인의 왕을 방문하러가는 동방박사들의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한 세 명의 현인들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는 잘 아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 곳에 있었을까요?

여기 보이는 이 사진은 영화, ‘내 사촌 비니’의 한 장면 입니다. 알라바마주의 한 법정에서, 어느 변호사가 확신에 차서 열변을 합니다. “진실이란 판정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옛 영국과 우리의 오랜 조상들로 부터 내려온 표현입니다.” 그런 후 배심원단의 모습을 비춥니다. 사진 속의 세명 중, 두명은 흑인입니다. 그들의 조상이 영국에서 왔을 터는 없지만, 자신들이 쓰고 영어는 영국조상으로 부터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이스라엘의 왕이자 유대인의 왕이신 분과 오늘 이 곳에 예배하러 오신 대부분의 미국, 브라질, 한국인 성도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동방박사들의 활약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예수님을 경배하러 갔던 사람들이 세 명의 현자들이나 세 명의 왕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단지 그 곳에 세 가지 종류의 선물이 있었다고만 말합니다. 만약 제가 셔츠, 넥타이, 그리고 신발 선물 받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세 가지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그 선물이 각각 다른 세 명의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세 가지 선물들을 각 사람과 연결 지었고, 나중엔 그들을 왕으로 바꾸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8세기경에는 그들에게 멜키오르, 게스퍼, 발타자르라는 이름까지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도둑들과 강도들 때문에 여행이 위험했고, 게다가 그들이 귀중한 선물들을 가지고 여행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단지 세 사람만이 그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여러 명의 무리였을 것이고 그 중 몇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 선물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그 동방박사들은 누구일까요? 몇몇 주석은 그들은 왕이 아닌,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박사라는 그리스어 표현이 성경에서 쓰여진 또 다른 유일한 곳은 사도행전 (13:6-8)인데 마술사(마법사) 또는 박수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술사는 단돈 5불에 점을 쳐줄 그러한 점쟁이 부류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미심쩍고, 술수를 쓰며, 또 이스라엘민족이 아닌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성탄 이야기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거룩한 아기 예수님 곁에 있게 된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아기 예수님 곁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을 짚어봅시다.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는 앞으로 오실 구세주를 기대해 왔습니다. 성탄절에는 하나님이 아기 예수님의 형상으로 우리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성탄절 25일 부터 12일 간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기간을 말하는 것인데, 어제가 성탄절로 부터 12번째 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났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떼어내도 되는 시간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제는 주현절 기간입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난바 되었습니다. 구원으로 오신 예수님을 대하는 올바른 반응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헤롯의 반응입니다. 3절에서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권력과 통치력을 가졌다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위협감을 주었습니다. 구원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구원을 바랐던 자들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맡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신의 삶의 중심을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을 포기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헤롯만이 두려워했던 것이 아닙니다. 온 예루살렘 전체가 헤롯처럼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도 헤롯과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보기 좋게 잘 계획되어진 삶, 그리고 우리가 받을 이익을 고려해서 짜여진 우선순위들을 내려놓기 싫어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우선순위로 세우는 것은 아마 그런 계획들을 복잡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헤롯과 같은 이런 상황에선 두 가지 선택만이 있습니다. 복종하거나 라이벌인 왕을 죽이는 것입니다. 헤롯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33년 후 예수님을 십자가형 시킨 예루살렘 또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자들과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자들도 후자에 속합니다. 헤롯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은 위협스럽고 거치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평화가 아니라 불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헤롯 왕은 아기 예수님 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두번째 반응은 무관심입니다. 이 반응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의 반응입니다. 4, 5절에 보면,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 장면을 쉽게 지나칩니다.

왕의 법정에는 다른 나라에서 온, 무언가를 발견하고 들뜬 방문자들이 있습니다. 나라의 우두머리인 왕이 대제사장에게 메시아에 대해 그리고 그가 어디서 태어날 것인지를 묻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쉽게 답합니다. 방문자로 온 동방박사들은 그 사실을 듣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거기엔 영적이고 신학적인 모든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질문을 받던지 어떻게 잘 대답 할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관념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되어져야 하는가를 아는 박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그냥 지식에 그쳤습니다. 그들은 최고의 지식을 갖추었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이 자부하는 믿음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고, 구세주시고, 인류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이 우리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는 이웃을 용서할 수 있고, 우리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신 것과, 그 분이 다시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마치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상일 뿐이지 실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변화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위선자의 삶을 초래한 율법의 족쇄였습니다. 아,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 또한 아기 예수님 곁,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세번째 반응은 경배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반응입니다. 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라고 나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종교성이 강한 유대 문화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이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따르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적대적인 이스라엘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매일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가치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에 의미를 두고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설렘, 고독, 사랑, 희열과 같은 삶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의미를 찾습니다. 대체로 그러한 사람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동방박사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별에 의미를 찾은 것이지 하나님을 찾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구세주를 이러한 이교도, 이방인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었습니다. 의미를 찾는 그들의 노력에 하나님은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과 같이 의미를 찾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보배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는 찾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오직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알맞은 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찾은 동방박사들의 반응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선물 자체는 예수님에게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적 관점에서는 그들의 선물은 아주 소중한 물건들이였습니다. 선물을 드리는 행위는 바로 예수님 안에서 의미를 찾은 것에 대한 그들의 경배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의미를 찾은 우리들도 이와 같이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재물과, 재능과 시간과 힘 즉, 우리의 삶을 유지해주는 가장 본질적인 것을 드리는 이유는 바로 그 분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미를 찾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예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외로움으로 우리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 자매분들이 섬김의 자리에 임명받게 될 것입니다. 임명을 받음으로써 그분들은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 보여주신 섬김의 마음과 첫 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야한다는 가르침을 맡아 나가야 합니다. 그 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우리 교회를 위해 시간과 힘으로 섬김는 것이 바로 경배 드림의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동방박사들이 부정한 자들이었고 그들의 구원자와는 무관한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은혜를 통하여 왕의 왕 되신 그 분 곁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눈에 익은 풍경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인 우리가 자연스럽게 예배드리는 이러한 모습과 같습니다. 주님의 같은 은혜로 우리 앞에 성찬을 베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드리나요? 헤롯과 같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드릴까요? 대제사장과 같이 지식은 있으나 행동하지 않는 모습을 드릴까요? 아니면 동방박사들과 같이 경배하는 모습을 드릴까요?

2013년에는 우리가 적었던 새해의 결단과 소망들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모습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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